첼리스트 양성원 “요즘 음색은 활로 그려지는 느낌”
입력 2013-03-24 17:01
세계적인 첼리스트 양성원 교수(46·연세대)는 지난달 1400년대 지어진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서 연주를 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독주회였다. 오후 8시 공연에 조명은 촛불뿐이었다. 600여년 역사의 수도원은 음악이 연주되면서 넉넉하게 울렸다. 어두운 조명과 오래된 수도원의 공명(共鳴)은 바흐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연주자와 청중, 제2의 악기인 공간까지 어우러진 바로 그 순간 바흐가 완성됐지요. 바흐가 이 곡을 만든 지 300년이 되어 가지만 공감과 울림이 있는 순간 곡이 완성되는 거죠.”
그때의 감동을 이어 4월 21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독주회를 갖는다. “바흐는 첼로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음악”이라며 바흐를 즐겨 연주해온 그이지만, 여섯 곡 전곡을 한 자리에서 3시간30분 동안 연주하는 것은 처음이다. 새로운 도전이다. 이날 독주회에는 영국 음악학자 데이비드 레드베터가 연주에 앞서 작곡의 배경과 이 곡의 역사적 가치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최근 서울 연세대에서 만난 그는 “몸보다 정신적으로 힘들다”고 말했다. “바흐의 음악세계가 워낙 깊고 투명하다보니 한 음 한 음을 놓치면 안 된다. 중요한 건 시간이 아니라 음 하나 하나를 이해하며 연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6년에는 같은 곡을 이틀에 걸쳐 연주했었다. 그는 “7년 전에 왼손의 손가락으로 바흐를 연주했다면 지금은 오른손의 활로 연주하는 느낌이다. 요즘은 활이 붓처럼 여겨진다. 음색이 활로 그려지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그는 언제 어디로 여행을 가도 바흐 악보는 무조건 가지고 간다. 힘들 때는 바흐를 아주 천천히 연주한다. “첼리스트에게 바흐는 구약성서 같은 곡”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악기를 통해 소리가 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느 순간 악기를 통해 소리가 나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때의 희열이야 말로 고독한 연습과정을 이겨내도록 만드는 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유럽에 머물며 바흐를 집중 탐구했다. 전체 36악장으로 이루어진 첼로 모음곡 전곡을 각 악장마다 화성과 연습방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직접 연주를 보여주는 영상을 만들었다. 무려 35시간 분량이다. 그는 “기술자인 카메라맨을 앞에 놓고 혼자 얘기하다 힘들면 멈추는 외로운 작업이었다. 1곡부터 시작했는데 5곡쯤 가니 목소리가 다 쉬었다”며 웃었다.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