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독일인은 의사 개인 아닌 의료 시스템을 믿는다
입력 2013-03-24 18:07 수정 2013-03-24 23:08
2006년 독일에서는 병원 고용의사 2만명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임금 30% 인상을 요구하고 근로시간 연장(주 38.5시간에서 42시간으로)에 반대하는 시위였다. 집단행동은 지난해에도 두 차례나 있었다. 1월에는 병원 의사들이, 10월에는 개업의들이 근로조건 개선과 보험금(보험수가) 인상 등을 요구하며 병원 문을 닫았다. 2006년 파업 당시 독일 의사 평균연봉은 3만5000(약 5000만원)∼6만5000유로(약 9400만원)로 11개 서유럽 국가들 중 꼴찌 수준이었다. 영국 의사들보다 15%, 미국 의사들보다 40%나 낮았다.
◇파업하고도 욕먹지 않은 이유=독일 의사들의 수입이 이웃나라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건 맞다. 하지만 평균연봉 7000만원을 ‘저임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돈’을 이유로 환자를 거부하는 의사들을 독일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독일의사협회 도멘 포드너(사진) 정책보좌관은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이 굳건한 덕에 긍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시민들이 ‘의사들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야?’ 하면서 관심을 기울였다”며 “한동안 정체돼 있던 의사들의 월급이 2006년에 제법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쾰른대학병원 의사들이 길거리 차량을 세차하며 벌인 세차시위는 특히 전국적인 호응을 얻었다.
◇기능자치, 독일 의료의 키워드=독일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지탄받지 않은 배경에는 공공 의료보험조합과 의사협회가 손잡고 움직이는 기능자치에 대한 신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전문성을 가진 직능집단과 조합이 자율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방식이다. 독일에서는 병·의원이 개별 의료서비스에 대해 공공 의료보험조합으로부터 받게 될 보험금은 의료보험조합과 공보험의사협회, 정부 3자가 만나 합의한다. 우리나라 역시 합의구조이지만 정부 입김이 결정적이다.
포드너 정책보좌관은 “물론 독일에서도 가능하면 적게 주려는 의료보험조합들과 최대한 많이 받아내려는 의사들 사이의 신경전은 존재한다”며 “그래도 오랜 협상의 전통 덕에 의사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수용되며 비교적 순조롭게 합의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의료정책은 철저하게 지방자치를 원칙으로 한다. 병원 투자, 의료인력 배정·양성 등은 모두 16개 주 단위로 결정되고 집행된다. 의사 면허증을 발급하고 전문의를 훈련시키고 서비스의 질을 관리하는 것, 개별 회원의 윤리규정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업무는 개별 주의 의사협회들이 담당한다. 독일의 연간 의료지출 총액은 2010년 기준 약 2870억 유로로 국내총생산의 11.6%에 달한다. 조합과 의사협회가 이 거액을 거두고 배분하는 역할을 사실상 책임져온 것이다.
◇영국의 실패 vs 독일의 선방=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의사들이 존경 받는 이유이다. 최근 터진 영국의 의료 스캔들은 비교대상이 됐다. 영국에서는 2005년부터 4년간 400∼1200명의 환자가 제대로 진료조차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는 ‘스탠퍼드 병원 진상조사 보고서’가 발표돼 충격을 줬다.
베를린응급병원의 홍보 담당자 안겔라 키예프스키씨는 “투자하지 않고 많이 받으려고 한 영국과 (보험료를) 많이 내고 충분한 서비스로 돌려받는 독일은 완전히 다르다”며 “독일에서는 영국이 겪고 있는 환자 대기 문제는 거의 없다. 언제든, 어느 병원에든 전화를 걸면 1∼2주 내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전문의를 만날 때까지 6개월∼1년 이상이 걸리는 대기시간이 사회적 문제가 돼서 최장 대기시간(18주)을 정하는 법까지 생겼다.
베를린=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