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달라진 화풍 선보이는 민중화가 강요배… 제주의 바람·하늘·산·바다를 담다
입력 2013-03-24 17:43
“내 그림은 번지수가 없어요. 혹자는 인상파라고도 하지만 어떤 화파에 속하지 않더라도 내용이 있고 양식이 있다면 그냥 ‘강요배 스타일’도 좋아요. 예술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신만의 스타일을 형성해나가는 건데 사실 엄청 어려운 일이에요.”
제주도 한림읍 귀덕리에서 작업하는 강요배(61)는 민중작가로 분류된다. 1980년대 민중미술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현실과 발언’에 참여했고 1989년부터 3년간 4·3사건 연구자들과 연구논문, 인터뷰 자료, 현장답사 등을 통해 ‘제주 민중항쟁사’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제주도의 바람, 하늘, 산, 바다를 담은 그림을 그리면서 작업이 조금씩 달라졌다. 최근에는 풍경화에서 추상화로 점차 옮겨가고 있다. 그런 그가 27일부터 4월 21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5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제주의 자연과 호흡하며 작업한 풍경화 40여점과 1990년대부터 그린 드로잉 10여점을 선보인다. 작업실 창문에서 내다본 풍경이나 새벽녘 해뜨기 직전의 하늘, 중문과 대포 해안을 따라 서 있는 총석에 부딪힌 파도가 만들어내는 물거품 등 제주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형용할 수 없이 투명하고 푸른 에메랄드빛 바다가 화면을 가득 채운 ‘명주바다’, 파도와 바람과 붉게 핀 꽃을 그린 ‘해·풍·홍(海·風·紅)’, 빛의 숱한 비늘이 흩어지는 순간을 포착한 ‘길 위의 하늘’, 제주의 특산물인 당유자(唐柚子)를 그린 ‘댕유지’ 등에서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 물씬 묻어난다.
제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20년을 보내고 서울대 진학부터 고교 미술교사까지 서울에서 20년을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생활한 지 20년째인 그는 ‘제주 예찬론자’다. “제주는 자연의 질감이 살아있는 곳입니다. 기후 변화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고 위안도 얻고 힘도 불어넣어 주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환경이잖아요.”
이제 그는 민중화가로서 역할은 내려놓은 것인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자연이 곧 민중의 삶의 터전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다루면서도 인간에 대해 뭔가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바다, 바람, 하늘, 꽃 등 자연에 민중의 소리가 깃들어 있는 거죠.”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의 오멸 감독은 존경하는 제주 출신의 예술가로 소설가 현기영과 화가 강요배를 꼽은 바 있다. 지금도 해마다 4월 3일이면 제주항쟁에 대한 그림을 한 점씩 그린다는 강요배는 “장르는 다르지만 슬픔을 아름답게 치유하려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그림은 어떤 것일까. “작업하는 사람도, 그림을 보는 사람도 변하게 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화가도 관람객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소통에 실패했다는 뜻이죠. 그림을 보고 ‘아’ 하는 순간 관람객은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응이 있어야 진정한 작품이고요.” 자질구레한 것은 버리고 시공간을 확장해서 우주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그의 작품은 고뇌와 갈등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