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의 노벨상 ‘라가치 大賞’ 두 번째 받는 창비팀 “한 번 받기도 어려운데… 얼떨떨해요”

입력 2013-03-24 17:43


25∼28일 열리는 이탈리아 볼로냐아동도서전의 최고상인 라가치 대상은 그림책 부문의 노벨상이다. 한번도 받기 어려운 그 상을 폴란드 여성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가 2011년에 이어 올해 또 받게 됐다. 둘 다 한국의 창비출판사와 작업한 것이다.

흐미엘레프스카는 2004년 한국에서 처음 책을 낸 이래 여러 출판사와 10여권의 그림책을 냈다. 유독 라가치 대상 수상작이 창비와의 작업에서만 나온 이유가 있을까.

창비의 문경미 어린이출판부장은 24일 “한번도 아닌 두 번째 받은 상이라 얼떨떨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그림책을 냈지만 창비에서 낸 건 결이 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눈’(올해 수상)과 ‘마음의 집’(2011년 수상)은 모두 철학적 주제를 담고 있다. ‘눈’은 ‘본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시선이 돋보인다. ‘마음의 집’도 마음을 집이라는 현실의 공간에 비유해, 어린이들이 ‘내 마음’을 돌아보도록 구성했다. 전반적인 색감도 부드러우면서도 동양적 여백이 강조되는 특징이 보인다.

문 부장은 “작가는 다양한 상징을 그림 속에 감춰놓는 것으로 유명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베르메르에게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고 한다. 그의 그림 스타일에는 철학적 주제가 맞을 거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작가가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 낸 그림책 중에는 인물 이야기나 정보를 담은 것도 있고, 다소 강한 색감의 그림책도 다수 있다.

그림책의 경우 특히 편집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짧은 페이지에 많은 걸 담아내기 위해서는 연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눈’을 담당했던 편집자 서채린씨는 “그림책 하나 만드는데 5년이 걸린 것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그나마 작가의 손이 빠른 편이어서 1년 정도 안에 끝났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원고 분량을 절반으로 축약했고, 색감은 물론 종이의 두께와 글자의 크기 및 위치 등 세밀한 부분까지 반복 수정했다. 창비는 아동 분야가 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한국 그림책 수준의 전반적인 질적 향상도 배경에 깔려 있을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89년 사회주의국가들의 붕괴 이후 사회과학 분야 서적이 맥을 못추자 출판사들이 아동시장에 뛰어들었다”면서 “그때 선진국에서 수입된 좋은 그림책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지금 출판시장에서 일하면서 이렇게 꽃이 필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볼로냐도서전에서는 2004년 첫 우수상이 터진 이후 거의 매년 수상작이 나온다. 2007년을 전후해서는 우리 그림책이 본격적으로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