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 (11) 책의 뒷모습
입력 2013-03-24 19:41
흔히 등을 보이면 진다고 한다. 등을 돌리는 것은 외면을 뜻한다. 책에도 등이 있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책등이 뒷모습일 테니 책을 여닫는 쪽이 앞이 된다. 책에는 엄연히 앞표지와 뒤표지가 있는데 그럼 뒤가 두 군데인 셈이다. ‘책등(spine)’은 책의 척추로 보는 게 맞겠다. 책꽂이에 가지런히 놓인 ‘등’들을 보면 신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측은하다. 책을 구입할 때는 책등을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나마 서점을 둘러보는 이들은 진열대에 놓인 책을 집어들면서 책등을 보겠지만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사람은 표지밖에 볼 일이 없다.
내 책장에는 언젠가 보겠다고 책장에 꽂아 둔 채 내내 책등만 보이는 책들이 제법 많다. 나처럼 소장 가치에 치중한 독자에게는 책등이 몹시 중요한 디자인 요소가 된다. 세로쓰기를 한 책은 제목이라도 눈에 익지만 가로쓰기 제목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제목을 읽을 수 있다. 책이 빽빽하게 찬 책장을 보고 있으면 좁고 긴 사각형 책등 안에 책의 정보를 담고 또 나름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차별화하느라 각축을 벌이는 것 같다.
어떤 것은 무뚝뚝하게, 또 어떤 것은 요염하게 돌아앉은 책을 보면서 어떤 디자이너가 어떤 의도로 디자인했을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하지만 언제까지 등만 보고 말 수는 없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