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④ 신뢰받는 의료복지시스템

입력 2013-03-24 17:36 수정 2013-03-25 00:25


“낸 만큼 혜택받는다”… 의무가입이지만 선택 가능

①평소에 많이 내고 아플 때 많이 돌려받기 ②조금 내고 아픈 만큼 지불하기

①, ② 중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건강보험의 쟁점은 결국 이런 선택의 문제로 요약된다. 보험료를 얼마나 걷어서 보장성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것인가.

독일 모델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①번에 가깝다. 물론 같은 ①번이라도 공공 의료보험조합이 보험료를 걷어 의료비로 쓰는 독일과 세금으로 충당하는 북유럽·영국은 크게 다르다. 의료서비스도 북유럽은 지방정부가, 영국은 중앙정부(NHS)가 직접 관리한다. 반면 독일 의료는 민간이 주도한다.

세금을 쓰지 않는다는 건 의료비 재원이 보험료 한도 내에서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낸 만큼 받는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관철된다. 가입자들은 매년 숫자로 이걸 체험한다. 만약 경기가 좋아 보험료 수입은 많고 지출이 적었다면 이듬해 가입자들은 보험료 일부를 환급받는 행운을 누린다. 만약 반대 상황이라면? 모든 가입자가 10∼20유로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독일, 얼마나 내고 얼마나 돌려받나=독일은 5개의 공공 의료보험조합이 가입자들로부터 보험료를 걷고 국가가 일정액의 정부보조금을 보태 건강기금을 조성한 뒤 이 기금을 통해 민간병원들에 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보험료는 가입자가 수입의 8.2%를, 고용주가 7.3%를 낸다. 총 수입의 15.5%가 보험료로 원천징수되는 것이다. 올해 기준 수입의 5.89%(가입자 2.945%, 고용주 2.945%)를 보험료로 내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는 셈이다. ‘많이 내고 많이 받는’ 시스템이다.

2004년부터 정부에서도 보조금을 주기 시작했다. 2003년까지 전무했던 정부보조금은 2004년 10억 유로(약 1조4400억원)를 시작으로 2009년 72억 유로(약 10조3900억원), 2010년 157억 유로(약 22조6500억원)까지 급격히 늘어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노동자 월급이 줄어들고 살림이 어려워지자 국가의 역할을 늘린 것이다. 최근 3년간 상황이 호전되자 보조금은 줄어드는 추세다. 올해는 115억 유로(약 16조6000억원)에 머물 전망이다.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긴 했지만 2012년(140억 유로)을 기준으로 전체 건강기금 중 정부보조금은 1%에도 못 미친다. 한국의 경우 국민건강보험법상 전체 건강보험 재정의 20%를 국가가 부담하도록 정해져 있다.

◇경쟁하는 공보험들=아오카(AOK), 바머(Barmer), 테카(TK), 이카카(IKK), 데아카(DAK).

독일인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1∼5위 공공 의료보험조합들이다. 전체 독일 인구 8180만명 중 공보험에 가입된 사람은 85%인 6990만명이다. 나머지 900만명(11%)은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들로 사보험에 가입돼 있다. 민간보험은 한 달 수입이 4350유로(약 630만원)를 넘는 경우에만 가입자격을 갖는다. 이 이하라면 의무적으로 공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이들 5개의 공보험이 가입자 유치를 위해 경쟁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단일한 보험우산 아래에서 보호를 받는 한국의 의료보험제도와 다른 점이다.

공보험별로 서비스 신경전도 치열한 편이다. 3위 조합인 테카에서는 최근 관절염 등 몇 가지 질병에 한해 침 및 지압치료가 일부 보험에 포함됐고, 디스크환자들을 위한 별도의 치료프로그램이 출범했다. 가입자 유치를 위한 서비스 차별화인 셈이다. 올해는 보험료를 일부 환급할 예정이다. 지난해 경영을 잘한 데다 경기활황으로 보험료 수입도 좋았던 테카는 가입자별로 80유로(약 115만원)씩을 돌려준다. 덕분에 가입자 반응이 폭발적이다. 경영실패로 보험료를 추가로 징수하는 해에는 해당 조합의 가입자는 대거 떨어져나간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조합 선택이 경제적 득실과 연결되는 만큼 경영실적을 꼼꼼하게 따져 계약을 해야 한다. 가입자는 최소 18개월의 의무가입기간만 채우면 언제든 보험조합을 바꿀 수 있다.

베를린=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