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의료서비스 동일해도 조합간 프로그램 질 차별화”

입력 2013-03-24 17:36 수정 2013-03-24 23:03


의료보험조합 ‘테카’ 정책담당관 안트예 발트허

평등과 경쟁. 안트예 발트허 공공 의료보험조합 테카(TK) 건강정책 담당관은 독일의 공공 의료시스템의 힘을 “누구나 평준화된 의료서비스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조합들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설명했다. 평등과 경쟁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는 독일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걸까. 지난달 초 베를린 루지엔가(街) 테카 사무실에서 발트허 담당관을 만났다.

-평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서 공공 의료보험조합들이 서로 경쟁한다는 건 모순 아닌가.

“5대 공공조합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동일하다. 어느 조합과 병원을 이용하든지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것이라는 신뢰야말로 독일 의료시스템의 근간이다. 대신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조합들은 가입자를 더 많이 유치하기 위해 애쓴다. 서비스를 추가하고 경영을 효율화하려 한다. 좋은 의사들과 특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서비스가 나쁘고 경영이 부실하면 가입자들이 외면할 거다. 그러면 조합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지고, 우리 같은 조합의 직원 생계도 어려워지지 않겠나(웃음). 그래서 우리는 조합들 간의 경쟁을 ‘평등을 전제로 한 경쟁’이라고 부른다.”

-민간보험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인가.

“대부분 고소득자가 대상이고 그들은 평소 보험료를 많이 낸 만큼 고가의 서비스를 많이 받는다. 추가 비용 없이 1인실 입원이 가능하다든지, 과장급 의사로부터 진찰을 받을 수 있다든지 혜택을 더 누린다. 어느 수준의 대우를 받을 것인지는 개인이 보험사와 협상해서 보험료와 서비스를 추가하면 된다. 일정 수입(월 4350유로 이하)의 근로자는 법적으로 공공의료보험에 가입할 의무가 있다. 그 이상인 경우에는 민간보험으로 바꾸거나 본인의 선택에 따라 공보험 안에 남을 수도 있다.”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일 때 의료비 지출이 많은 노인 가입자가 차별당하지는 않나.

“개별 조합이 보험료를 걷으면 일단 건강기금으로 적립했다가 돌려받게 되는데 이때 가입자 중 노인과 젊은이의 비율, 중환자 숫자 등을 고려해서 예산을 책정한다. 가입자를 많이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기는 하지만 의료비 사용이 많은 노인이나 특정 질환을 가진 환자를 차별하는 일은 절대 없다. 조합들 간의 경쟁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다. 누가 복지서비스를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제대로 제공하는가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다. 그런 경쟁이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

-한국에서는 선택진료비(특정 전문의에게 진료받을 때 추가 지불하는 비용)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크다. 독일에서 선택진료를 받으려면 비용이 어느 정도인가.

“질문 자체를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웃음). 이미 보험료를 냈고 공짜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왜 자기 돈을 내고 의사를 골라서 진료를 하려고 하나. 독일에서는 설사 BMW 회장이라도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거다. 그는 유명의사를 고를 수 있는 고가의 민간보험을 들었을 테니까 선택진료비 같은 건 낼 리가 없다.”

-독일에 질병으로 인한 파산은 없는 건가.

“만약 어떤 환자가 5가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보험이 아직 인정하지 않는 신기술이라고 해보자. 보험공단과 병원, 가입자가 그게 환자에게 꼭 필요하다는 걸 합의해야 한다. 규정에 없는 의료서비스이더라도 보험금이 지급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아플 때 생활비 문제도 공공 의료보험조합(6주 고용주, 이후 72주는 조합 책임)이 상병수당으로 해결한다.”

베를린=글·사진 이영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