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어, 축구도 수영도…”
입력 2013-03-24 16:54 수정 2013-03-24 19:57
成大 최연소 합격자 ‘로봇다리 세진이’와 印尼 다리 장애 소년 넬디의 우정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인도네시아의 한 소년이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다리가 다시 생기게 해주세요. 아이들이 놀리지 못하게 힘센 형을 보내주세요.” 한 달 후 먼 나라에서 키가 큰 멋진 형이 찾아와 소년의 다리에 특별히 제작된 의족을 신겨주었다. 소년은 학교도 걸어서 다닐 수 있고, 축구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소년이 가장 놀란 것은 멋진 형이 자신보다 더 장애가 심하다는 사실이었다. 형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두 다리와 오른쪽 손이 불편한 장애를 극복하고 로키산맥을 등정했고 장애인 국가대표 수영선수가 되었으며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소년의 기도를 정확하게 들어 주신 것이다.
이 동화 같은 이야기는 2009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19세 미만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3관왕에 오르면서 ‘로봇다리 세진이’로 이름을 세상에 알린 김세진(16)군과 인도네시아 소년 넬디(12)군의 이야기이다.
#세진과 넬디의 첫 만남
2009년 5월. 인도네시아 카나탕에 살고 있는 넬디는 오토바이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더 이상 친구들과 뛰어놀 수 없게 된 넬디는 슬픔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농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던 넬디의 부모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에 후원을 요청했다.
꼭 같은 시기, 한국의 세진은 자신과 같이 몸이 아픈 아이를 후원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을 걸을 수 있게 해준 ‘로봇다리’를 물려 줄 동생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컴패션을 통해 아동결연을 신청했고 그해 6월 넬디의 후원자가 됐다. “지구 반대편에 저와 똑같은 아이가 있는 것 같았어요. 저도 어린시절 다리가 생기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했기에 그 아이의 마음을 잘 알아요. 넬디를 만나서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세진은 그해 9월, 인도네시아 카나탕을 찾아갔다. 넬디는 두 개의 쇠다리를 한 세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자신보다 장애가 훨씬 심한 세진이 국가대표 수영선수이고 로키산맥도 등정하고 교과서에도 실린 유명한 사람이란 걸 알고 더 놀랐다. 세진은 넬디에게 “네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어. 네가 맘만 먹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형이 그렇게 해왔거든”이라고 말했다. 넬디는 “형은 너무 멋있어. 난 목사님이 되고 싶었는데 형처럼 수영선수가 될까봐”라고 말했다.
신기하게도 두 아이의 발사이즈가 똑같았다. 넬디는 세진이가 준 로봇다리를 착용하고 더 이상 목발을 짚을 필요가 없어졌다. 넬디는 세진을 통해 꿈과 희망이 생겼다. 잃었던 웃음도 찾았다.
#고난은 변장한 축복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세진이 의젓한 대학생이 되기까지 수많은 고난의 강을 건너야 했다. 학교폭력과 왕따를 피해 학교를 다섯 차례나 옮겨야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세진이를 ‘가슴으로 낳아’ 키운 엄마 양정숙(45)씨가 있었다. 오전에는 수영, 오후에는 공부에 매달렸다. 이런 노력으로 9세 때 5㎞ 마라톤을 완주했고 미국 로키산맥(3870m)에 올랐다. 12세 때에는 세계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접영 50m, 자유형 150m, 개인혼영 200m 금메달을 휩쓸었다. 같은 해 국내에서 열린 마라톤대회에서 10㎞를 완주했고 이때 부상으로 받은 승용차를 장애인 야학시설에 기증했다.
세진은 넬디를 만나고 온 후 ‘2012년 런던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맹훈련했다. 그러나 행정상의 문제로 출전이 좌절됐다. 후원자들은 떠나고 절망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진이는 낙담하는 대신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9개월 동안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잇달아 합격한 뒤 2013년 성균관대 스포츠학과 수시모집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어머니 양씨는 “기도를 통해 런던 금메달은 우리들의 우상이었음을 알게 됐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목표를 주셨는데 그것을 모르고 실망 했던거죠.”라고 말했다.
#세진과 넬디의 두 번째 만남
“넬디, 세상에 기대하면 안돼 세상이 나를 기대하게 만들어야 해. 없는 것만 생각하면 슬퍼진다. 가진 것을 생각해 그러면 희망이 생겨.” “세진이 형,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란 것을 알았어. 하나님께 감사해.”
세진과 넬디는 첫 만남 이후 한시도 잊지 않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지난 15∼19일 세진은 인도네시아를 두 번째 방문했다. 세진은 넬디를 만나기 전날 울면서 “넬디가 실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게 맘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넬디는 한국말로 “괜찮아 형”이라고 말했다.
이번 만남을 통해 세진은 넬디에게 한국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세진이 로봇다리를 처음 착용하고 걷기 연습을 할 때 엄마가 매일 불러주었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수화와 같이 불렀다. 또 넬디에게 “우리가 지금은 언어가 달라서 말이 잘 안 통하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하늘의 언어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거기에 목표를 두고 살자”고 말했다.
헤어질 때 두 사람은 꼭 안았다. 눈물을 흘리는 동생에게 세진은 “울지 마, 넬디. 우린 또 만날 거야. 사실 4년 전 너를 처음 만나고 다시 오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자신이 없었어. 그런데 이렇게 왔잖아 이젠 자신이 있어”라고 말했다.
세진과 넬디는 후원자와 수혜자의 관계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였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