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명문高 몰락] 평준화 후폭풍… 철옹성 전통명문 外高에 무너지다
입력 2013-03-22 17:40
몇년 전만 해도 검찰 내에서 ‘개털 클럽’이라는 말이 회자되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역적 연고가 없고, 비(非)명문고를 졸업했으며, 응집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듣는 서울대 출신 검사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다양한 학연과 지연으로 촘촘히 엮인 검찰 조직 내에서 든든한 학맥과 지역적 연고는 검사들의 큰 자산으로 여겨졌다. 반대로 특별한 학연과 지연을 갖지 못한 검사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컸다. 비명문고 출신 검사장급 간부는 사석에서 “인사철만 되면 끌어줄 선배가 없어 참으로 힘들었다”고 토로하곤 했다.
그러나 검찰 내 명문고 전성시대는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다. 채동욱 검찰총장 내정은 상징적이다. 채 내정자는 고교 평준화 1기, 이른바 첫 ‘뺑뺑이’ 세대다. 서울에서 태어나 세종고와 서울법대를 나왔다. 채 내정자가 평준화 고교 출신 첫 검찰총장은 아니다. 고교 평준화 세대 첫 검찰총장은 서울 보성고를 졸업한 전임 한상대 총장이었다. 하지만 한 전 총장 임명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이라는 특수관계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정설이다.
1999년 이후 검찰총장의 출신 고교를 살펴보면 경북고 출신이 3명(박순용 이명재 정상명), 목포고(신승남) 대전고(김각영) 서울고(송광수) 여수고(김종빈) 부산고(임채진) 경기고(김준규) 등 지역 명문고가 주류를 이뤘다. 서울중앙지검장의 경우에는 2002년부터 대전고 출신이 두 번(유창종 서영제)을 내리 하다가 부산고가 바통을 이어받아 3연속(이종백 임채진 안영욱) 기용된 적도 있었다.
명문고 인맥이 점차 사라지는 것은 고교 평준화가 실시된 이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교 평준화 제도는 1974년 서울·부산을 시작으로 1975년 대구·인천·광주로, 1979년 대전·전주·마산 등지로 확대됐다. 평준화 이후 명문고 출신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전과 같은 압도적 세력 형성은 불가능해졌다.
10년 전인 2003년과 2013년 3월 현재 검찰 내 검사장급 고위 간부들의 출신고를 비교해 보면 이러한 특징은 더욱 명확해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4월 당시 송광수 검찰총장을 필두로 한 검사장급 이상 간부 39명의 출신 고교를 보면 경기고가 모두 12명에 달했다. 이어 부산고 5명, 경북고 3명, 대전고와 서울고가 2명씩이었다.
10년이 지난 2013년 3월 현재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49명을 분석한 결과 경기고와 부산고는 1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검찰 내 최대 인맥을 과시했던 경기고의 세력 축소는 두드러진다. 경기고 출신 검사장급 수는 2003년 12명에서 2007년 2월 8명으로, 2009년 4명으로, 2013년 3월 현재 0명으로 줄었다.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유일한 경기고 출신 간부였으나, 21일 사퇴했다. 전반적인 명문고 출신들의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전임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는 경북고 출신들이 강세를 보였다. 경북고 출신 검사장급 간부는 2003년 3명에서 2007년 6명으로, 2009년 8명으로 늘었다가 2013년 현재 4명으로 줄었다. 현재 경북고 외에도 대구고 출신 4명, 대건고 출신 2명이 검사장급 자리에 포진해 있다. TK 출신을 우대했던 MB정부의 검찰 인사가 낳은 현상이라는 지적이 많다.
정권에 따라 특정 지역 출신 우대 경향은 계속됐지만 검사장급 고위 간부들의 출신고 스펙트럼은 이전보다 훨씬 다양해지는 추세다. 2003년 4월 당시 검사장을 배출한 고교는 17곳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27곳으로 늘었고 2013년에는 33곳이 검사장급 이상 간부를 배출했다. 명문고 출신의 부장검사급 간부는 22일 “내가 특정 고교를 나왔다고 해서 혜택을 입은 기억이 별로 없고, 뺑뺑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며 “검찰 내 고교 모임은 1년에 한두 번 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