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해커
입력 2013-03-22 18:33
국제 해커 집단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어나니머스(Anonymous)다. 익명이라는 의미의 어나니머스는 2011년 멕시코의 마약 조직 ‘로스 제타스’와 일전을 치르면서 이름을 날렸다. 로스 제타스가 술집에서 상대 조직원들을 납치했는데 어나니머스 회원 1명이 끼어 있었다. 어나니머스는 그를 풀어주지 않으면 로스 제타스 간부들의 신상정보 등을 공개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로스 제타스가 웃어넘겼지만 간부들의 신상정보 요약본이 담긴 팩스를 받게 되자 조직원을 석방했다.
어나니머스는 2003년 만화영화나 음악의 저작권 보호에 맞서는 과정에서 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별한 리더 없이 채팅 사이트 등을 통해 움직인다. 어나니머스가 내건 명분은 표현의 자유, 인터넷 검열과 정보의 사유화에 대한 반대다. 어나니머스가 본격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위키리크스의 편집자인 줄리언 어산지를 공개 지지하면서였다. 어산지가 2010년 미 외교 및 국방 기밀문서를 공개하면서 금융활동을 차단당하자 미국의 유명 신용카드사에 디도스 보복공격을 감행했다. 어산지도 호주의 유명한 해커였다. 16세 때 멘덕스라는 이름으로 해킹을 시작해 캐나다 통신사 노르텔의 지사를 해킹했고, 호주대학 등의 컴퓨터에도 침입했다. 그는 스웨덴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자 지난해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망명했다.
제1세대 해커의 대부 리처드 스톨먼 MIT 교수는 ‘모든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는 슬로건 아래 유닉스의 대체 운영체제 GNU를 개발해 공개했다. 그러나 제2세대를 넘기면서 해커들은 다른 컴퓨터에 피해를 주는 크래커로 변모했다. 3세대 해커 로버트 모리스는 1988년 웜 바이러스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6000대 이상의 컴퓨터를 마비시켜 형사처벌을 받았다. 4세대 케빈 미트닉은 FBI 영구 수배 리스트에 올랐다.
지난 20일 우리 방송국과 금융업체 등에 사이버 공격을 가한 범인은 어나니머스와 행태가 다르다. 예고도 없고, 공격의 이유도 밝히지 않고 있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관측들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량살상력 보유를 지상목표로 삼고 있는 집단이 사이버 공격력을 갖췄다면 위험성을 일반 해커 집단에 비교할 게 아니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