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하나님의 임재
						입력 2013-03-22 17:58  
					
				“우리 부부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함께 제자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때 로렌스 형제의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감동 속에 읽고, 영성을 추구하는 가정생활을 꿈꾸었지요. 그러나 두 아이를 양육하며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북새통 속에서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시고, 우리의 영성은 점점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 워킹 맘의 하소연이다.
이 부부가 대학시절에 읽은 17세기 로렌스 형제의 저서 ‘하나님의 임재 연습’은 기독교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특별한 기쁨을 발견했다. 그래서 부엌에서 감자를 깎을 때나, 성전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나 똑같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었다. 로렌스는 “우리는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만약 제가 설교자라면 하나님의 임재하심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설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영적 지도자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훈련하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오랜 기독교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들은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고, 결혼해서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속세로부터 벗어나 독신으로 수도원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더욱 깊이 경험하기를 소원했다.
그렇다면 결혼한 우리들은 이 부부가 고민하는 것처럼 어떻게 해야 직장과 가정의 북새통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고 살 수 있을 것인가. 결혼과 직장을 통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며, 영성이 시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새롭고 심오하게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성경은 우리가 진실로 그렇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놀라운 말씀들이 많이 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증거궤에는 얼굴과 날개가 서로 맞닿은 두 그룹(Cherubim)으로 덮여 있었다. 하나님께서 ‘두 그룹 사이에서’ 나타나시는 모습은 구약에 자주 나온다(삼상 4:4)(시 80:1)(사 37:16). 히브리서 기자도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라고 인용한다(히 9:5).
이렇듯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두 존재가 한데 어우러져 ‘함께’하는 곳에 나타나신다. 예수님께서도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하셨다(마 18:19∼20).
주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하심이 얼마가 기쁜 일인가? 바로 우리의 가정이 “두세 사람이 주님 이름으로 모이는” 가장 중요한 곳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들의 직장에 임재하신다. 루터(M. Luter)는 성직과 세속 직업의 구분을 거부했다. 그래서 개신교는 성직자(clergy)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직업은 하나님의 소명으로 주어진 성직(聖職)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라고 했다(고전 12:14∼27). 루터는 이를 ‘하나님의 얼굴(Lavae Dei)’이라 해석한다.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이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인 셈이다.
우리의 가정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안에서 살아가는 지상천국이다. 그리고 우리의 직장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을 ‘가정사역과 직장사역’이라고 한다.
지금 누구라도 마음을 새롭게 하면, 북새통 같은 가정과 직장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누리는 두 그룹이 될 것이다.
김종환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