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노트-백소영] 약이 필요 없는 세상

입력 2013-03-22 17:57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 힘들어! 그래서 단잠을 주는 마약성 약도 먹고 마음의 안정을 얻는 ‘힐링’ 프로그램들에 열광하는 현대인들. 고통을 피해보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접하다가 문득 “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피할 수 있는 병을 애써 키워놓고서 뒤늦게 ‘힐링’을 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 며칠 김연아 선수 소식에 들떠 계셨죠? 네. 저도 연아 선수가 참 신통했어요. 하지만 그건 2등과 20점 넘게 차이 났기 때문도 아니요 ‘숙적’ 마오를 제쳤기 때문도 아니에요. 연아 선수는 아름답고 기술적으로 스케이트를 탔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녀만 칭찬하면 되지 않나요? 왜 모두들 그녀를 언급하며 자꾸만 마오 선수와 비교를 할까요. 우리의 그런 말과 시선이 누구를 아프게 할지 뻔히 알면서…

우리는 매사에 그래요. 온통 경쟁과 비교입니다. 기준은 획일적인 숫자놀음이고요.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해!”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숫자를 좋아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로지 높은 점수, 월등한 점수, 압도적인 점수에만 환호하느라 최종승자를 제외한 다수가 좌절감과 실패감, 고통을 맛보아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아프지요. 다들 힘들지요. 상처 입지요. 그래서 ‘힐링’을 외치지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숫자화해서 비교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이상주의자에 낭만주의자, 한심하고 무능하다 비웃으셔도 할 수 없어요. 개나리는 10점, 진달래는 20점, 목련은 50점, 장미는 100점!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찌 점수화할까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저마다의 생명이 각자 가진 아름다움을 온전히, 풍부하게 꽃피울 수 있는 세상. 그 모습을 보며 하나씩 단독으로 긍정해주고 박수쳐주는 세상. 그런 세상이라면 굳이 ‘약’이, ‘힐링’이 필요 없지 않겠어요? 각양각색 꽃들이 흐드러진 봄날을 기다리며 세상도 그랬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백소영 교수(이화여대 인문과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