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교회가 있었네-초도제일교회] 새벽 4시, 선교의 땅끝이 기도로 깨어난다

입력 2013-03-22 17:27 수정 2013-03-22 20:18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초도제일교회

남녘땅의 최북단인 강원도 고성군. 초도제일교회는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마을에 있다.

이곳은 물 좋은 샘이 많아 ‘샘동래’라 불렸고 이후 마을 앞바다에 갈대를 비롯한 풀이 무성한 작은 섬이 있어 ‘초도(草島)리’라는 명칭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교회 바로 뒤편에 깨끗한 백사장과 짙푸른 바닷물이 절경을 이룬 초도해변이 펼쳐져 있다.

초도해변은 군사보호시설이라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된다. 평소에는 철책이 쳐 있어 접근하기 어렵다. 주민들은 “고기잡이를 하다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북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곳이라 항상 어업을 지도하는 경비정이 순찰을 한다”고 말했다.

뱃사람들의 기도

지난 19일 찾아간 초도리 마을에는 바닷바람이 매서웠다. “4월 말까지도 바닷바람이 강해 이 마을에는 봄이 없다”는 주민들의 말이 과장은 아닌 듯했다.

여름 휴가철에 초도 1·2리의 주민 상당수는 민박집을 운영하거나 횟집, 막국수집 등에서 일한다.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차례로 나타나는 거진항, 화진포·초도해변, 대진항, 마차진해변, 명파해변 등으로 피서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특히 화진포와 그 주변의 바닷가는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1948∼50년 북한의 김일성이 여름 휴양지로 사용한 적이 있어 ‘김일성 별장’이라 불리는 ‘화진포의 성(城)’과 이승만, 이기붕 등 옛 권력자들의 별장이 개방돼 있어 역사 자료를 볼 수 있다.

주민들은 그러나 “금강산 관광길이 막힌 뒤로 수입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여름철 성수기를 제외하면 주민들의 주업은 고기잡이다. 주민 400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는 가까운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문어, 도루묵, 광어 등을 잡는다. 이 중에서도 연중 꾸준히 잡히는 데다 가격도 비교적 높게 책정돼 있는 문어 잡이에 많이 나선다. 해삼 전복 등을 건져오는 할머니 해녀들도 있다. 감자 고추 배추 깨 농사를 조금씩 짓기도 한다.

뱃사람들이 많은 만큼 이곳에는 무속신앙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렸다. 정기적으로 풍어제를 올리고 조업 중 실종사고가 나면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최북단에 속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어려운 ‘선교의 땅끝’이라고도 여겨진다. 김승모(40) 목사는 “우상과 미신을 타파해야 하기 때문에 복음 전파가 쉽지 않지만 그런 만큼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무거운 의무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30여명이 출석하는 초도제일교회의 새벽예배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늦어도 새벽 5시에는 배를 타야 하는 성도들을 배려해서 다른 교회보다 일찍 새벽예배를 갖는다. 김 목사는 “10명이 채 안 되는 성도들이 참여하지만 그 기도의 간절함은 어느 큰 교회보다 절실할 것”이라고 했다.

기도 제목은 ‘안전조업, 무사귀환’이다.

2t짜리 배를 타는 김영락(63) 장로의 아내 홍금숙(51) 권사는 매일 “사고 없이 무사히 조업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홍 권사는 “교회 행사 때 쓰려고 문어 100㎏만 잡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기도대로 되곤 하는데 우리 수입 좀 올리자고 많이 잡게 해달라면 잘 안 들어주시더라”면서 웃음 지었다.

김 장로는 “바다에서 청춘을 보냈는데 큰 사고 없이 여태 무사히 조업할 수 있는 게 다 하나님 덕분”이라며 “2년 전 보증을 잘못 섰다가 어선이 압류됐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김 장로님은 주일을 꼭 지키시는데도 이 지역에서 판매 실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베테랑”이라고 소개했다.

김 장로 부부는 처음으로 교회에 함께 나온 95년 3월 18일을 또렷이 기억했다. 이전에는 김 장로가 사찰에 다니던 어머니의 뜻을 따른다며 먼저 크리스천이 된 아내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의 끊임없는 설득에 남편뿐 아니라 시어머니까지 그리스도인이 됐다.

홍 권사는 “다 천국 가는데 혼자서만 지옥 가실 거냐고, 하늘나라에서 따로 사시려고 그러느냐고 작정을 하고 계속 권했다”며 “우리 시어머니는 당뇨합병증으로 다 돌아가시게 됐을 때도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3년이나 더 사시다 가셨다”고 했다.

16세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다는 함희영(53) 집사는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우니까 바다는 항상 위험하다. 한번 빠지면 죽는 거니까…. 뱃사람들은 다 안전조업, 무사귀환이 기도 제목 아니겠느냐”고 했다. 그의 어머니 서연홍(74) 권사는 “7남매를 뒀는데 바다에 나가는 아들은 위험한 데서 일하니까 항상 걱정되고 중국선교사로 나가 있는 아들도 걱정이고 어디 걱정 안 되는 자식이 있겠느냐”고 했다.

어촌마을에 샤머니즘이 깊숙이 자리 잡은 탓에 크리스천이 된 뒤 손가락질을 받는 성도도 있었다.

윤숙희(86·여) 권사는 “부끄럽지만 나는 신이 들려서 40여년을 무속인으로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교회로 인도해 주셨다”면서 얘기를 꺼냈다. “4형제를 뒀는데 10년 전에 내가 교회에 나오고 나서 둘째 아들이 뇌출혈로 세상을 떴고 그 이후로 맏이도 위암 수술을 받고…. 사람들이 무당질을 계속 안 해서 그렇다고 수군거렸지만 무슨 고통을 당하더라도 주님을 섬겨야 하는 것 아니겠어. 온전치 못하더라도 귀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얼마나 고마워요.”

고난 속에서 더 깊어지는 믿음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의 초도제일교회는 84년 10월 7일 창립됐다. 박기수(간성제일교회) 목사가 개척했다. 처음에는 슬레이트 지붕을 덮은 창고를 예배당으로 썼다. 90년 ‘창고 예배당’에 불이 난 뒤 그 건너편 현재의 자리에 교회가 새로 지어졌다. 이전 예배당은 목사사택으로 쓰인다.

성도들은 “도시교회에 비할 수 없는 작은 교회를 섬기지만 기도의 열기는 어느 교회 못지않다”고 자부했다.

특히 ‘뱃놈’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병준(64) 권사의 믿음이 남달랐다. 박 권사는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진 다음에야 하나님을 영접했다”고 말했다. 그의 딸(36)은 6세 때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에 걸렸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의 아내는 딸의 병이 빨리 낫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를 드렸지만 박 권사는 “부질없는 일”이라며 아내를 타박했었다. 박 권사는 눈시울을 붉혔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 딸 병을 고쳐달라고, 병이 나으면 내가 교회를 다니겠다고 감히 조건을 걸었는데 결국은 제가 진 거예요. 딸이 다 나아서 간호사가 됐고 멀쩡히 시집도 갔으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인생이 바뀝니다. 사는 이유가 바뀌는 겁니다.”

교회 인근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문춘매(68·여) 장로는 “조금이라도 더 일찍 예수님을 영접했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 84년 교회에 처음 나온 문 장로는 “남편이 뇌종양 수술을 포함해서 대수술만 6번을 했고 죽을 고비까지 넘겼다”며 “교회에 얼른 나와서 기도를 했더라면 믿음 안에서 빨리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머리 아프단 소리 안 하고 잘 지내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회의 선한 영향력은 고된 생활에 지쳐 있는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역할을 했다. 험한 바다 일을 마친 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며 피로를 푸는 게 일상인 주민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

한 60대 성도는 “여기는 취미생활을 할 것도 없으니까 일 끝나면 문어 삶고 싱싱한 물고기 회를 쳐서 낮부터 새벽까지 술을 먹었는데 다 교회 다니기 전 옛날 얘기”라고 말했다. 70대 여성은 “남편이 술을 너무 많이 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며 “아직 남편을 전도하진 못했지만 예수님을 영접한 뒤로 평안함을 얻었다”고 했다.

교회는 또 서울에 있는 교회들과 손을 잡고 여름 선교행사를 진행하면서 어르신 성도들이 혈압·혈당 검사 등의 건강검진을 받도록 한다. 김 목사는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역사가 하루빨리 일어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복음을 전하는 방식은 주로 가족관계에 중심을 둔다. 무속신앙의 영향이 커 한 가정의 구성원 모두를 전도하기가 꽤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가족 전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친척이나 친한 이웃으로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것이다. 김 목사는 “도시에선 노방전도도 많이 했었는데 여기서는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것 같다”며 “무엇보다 모범적인 삶을 사는 크리스천 가족이나 이웃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기독교의 긍정적인 역할에 공감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2012년 1월 부임한 김 목사는 처음부터 목회자를 꿈꾸지는 않았다. 99년 한신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6년여간 회사원으로 지냈다. 2009년 한신대신대원을 졸업했고 서울 늘샘교회와 발음교회 등지에서 사역했다.

김 목사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계속 고민을 했지만 그때마다 이상하리만큼 신학공부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생겼다”고 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왜 부르시는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방황하고 어려움도 겪다보니 결국 주님의 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고성군청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박순길(38) 사모와 함께 앞으로 결손가정의 어린이들, 다문화가정 내 갈등까지 끌어안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는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로서 부끄럽지 않은 교역자, 성도들이 되도록 쉬지 않고 기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갈 6:17)

▶ 초도제일교회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를 타고 가면 4시간 정도 걸린다.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홍천IC 교차로에서 속초·인제·신남 방면의 44번 국도를 타고 54㎞를 달린다. 한계 교차로에서 간성(고성)·속초 방면으로 좌회전해 46번 국도를 타고 가다 대대삼거리에서 7번 국도로 진입한다. 통일전망대 쪽으로 달리면 대진중학교를 지나 우측에 교회가 보인다.

고성=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