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서장훈 27년 선수생활 회고 “내 농구인생은 30점짜리 절반은 행복… 절반은 고통”
입력 2013-03-21 18:18
“앞으로 살면서 저는 명예를 더 얻으려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돈을 더 벌려고 노력하지도 않겠습니다. 낮은 곳을 바라보며 겸손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27년 농구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국보급 센터’ 서장훈(39·부산 KT)이 21일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는 심경을 밝혔다. 그는 ‘먼 훗날은 모르지만’이라는 전제로 당분간 편하게 쉬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때 야구를 좋아했지만 키가 커서 농구공을 잡게 됐다는 서장훈은 자신의 삶에서 농구를 ‘애증’이란 말로 설명했다. 농구를 죽도록 사랑하면서도 이 때문에 너무나 많이 힘들었고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어린 시절 처음 만났던 농구장은 편안한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코트 안에 있으면 그 어느 때보다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너무 많은 (언론) 관심을 받게 되고부터 부담감에 억눌러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단다.
항상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다고 회고했다. 이기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게 되다보니 승부에 더욱 집착하고 걱정을 달고 살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국보급 센터’라는 별명에 대해 감사하지만 송구하다고 했다. 그런 호칭을 듣기에 너무 미미한 존재라며 고개를 저었다. ‘스타’는 대중의 지대한 존경과 관심을 받고 사람들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는 데 지금 농구계에 그런 소리를 들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는 스타의 반열에 오르려면 “박지성, 박찬호, 차범근, 선동열 선수 정도 돼야 진정한 스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서장훈은 자신의 농구 인생을 점수로 매기면 ‘30점’ 밖에 안 된다며 누구보다도 잘 하려고 노력했지만 자기의 능력이 부족했음을 고백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조금 과한 모습에 대해서 불편을 느꼈을 사람들에게 사과를 드린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오랫동안 좋은 꿈 잘 꿨습니다. 앞으로 부모님께 효도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장훈은 프로농구가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코트를 떠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고 얼굴을 붉혔다. 그는 또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반도 못했을 것이라며 그동안 못난 아들 때문에 고생 하셨는데 남은 인생 부모님의 은혜를 보답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1일 서울 세종로 KT 광화문 올레스퀘어 빌딩. 회견을 끝낸 ‘국보급’ 거인(巨人)은 ‘낮은 곳’을 바라보며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디뎠다. 인근 고층 건물엔 새 봄을 맞아 내걸린 광화문글판이 시선을 끌었다. ‘가장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김승희)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