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진단-사랑의교회 사태로 본 ‘학위 거품 이대로 좋은가’] (하) 대안은 ‘스펙’ 대신 ‘영성’이다
입력 2013-03-21 17:48
건강한 목회엔 스펙보다 영성·인품이 우선
#1. A목사는 지방신학교 출신으로 개척교회를 6년 만에 300명으로 부흥시킨 경험이 있다. 포항 B교회 청빙 당시 ‘교인들의 평균 학력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반대여론이 심했다. 하지만 A목사 부임 후 새신자가 1년에 수백명씩 등록하자 반대여론이 사라지고 교회가 활기를 띠고 있다.
#2. 서울의 C교회. 미국 석·박사 출신인 D목사를 청빙해 교인들의 기대감이 컸지만 2년 만에 사임하면서 교회가 큰 혼란에 빠졌다. 자녀교육 문제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교인들은 ‘앞으론 해외 유학파 목회자를 절대 받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스펙’을 중시하는지는 청빙 광고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기독공보 기독신문 한국성결신문 기독교타임즈 등 주요 교단지에 실린 청빙광고엔 ‘40∼55세로 4년제 정규대학과 신대원 졸업자, 담임목사·부목사로 5∼7년 목회경험자’라는 문구가 단골로 등장한다. 일부 교회는 ‘신학대 교수도 경력자에 포함시킨다’는 부수조항까지 삽입해 놨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신대원 학위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학위까지 갖춰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기성의 한 부목사는 “같은 조건이라면 석사보다 박사, 국내보다는 해외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방에 계신 목회자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월요일마다 상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이력서 상의 경쟁인데 문제는 실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며 “지원자들의 경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력서상 한 줄이 더 있고 없고가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부목사들 사이에선 ‘박사과정 입학이라도 한 줄 넣어야 한다’는 우스개가 있다”고 소개했다.
예장 통합의 한 목회자는 “수도권에 교회 건물이 있고 교인이 100명만 있어도 최소 40∼50명이 지원한다는 소문이 있다”면서 “교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 아무래도 박사 학위가 있다면 눈에 띄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교회가 일반 사회의 채용 방식을답습하는 현상이 나타나다 보니 ‘스펙보다 깊이있는 말씀과 기도, 성도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영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김기현(47·로고스서원 대표) 목사는 “학문적 열정이 없다면 박사학위 취득은 되도록이면 권유하고 싶지 않다”면서 “박사학위가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데 있어서 그렇게 큰 도움이 되는 수단은 아닌 것 같다. 학위취득보다 다양한 독서와 토론 활동을 통해 사람과 삶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노력이 목회 활동에 훨씬 유익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스펙보다 영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목회자는 유기성(선한목자교회) 목사다. 신학대 수석입학, 수석졸업을 했던 그도 석·박사 학위 취득을 당연한 코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둔 상황에서 기도 중에 “너의 학위를 내려놓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공부를 잘한다는 주의 사람들의 평가, 그것은 내가 내려놓아야 할 자존심이었다”면서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나의 석사학위를 바치라고 요구하셨다”고 저서에 고백하고 있다. 최종 학력이 신학대 졸업인 그는 현재 교계와 지역사회에서 건강한 목회자로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이런 인식이 확산되다 보니 교회에서도 공개청빙보다 추천을 받아 영성을 검증하는 곳이 늘고 있다. 부산 Y교회 청빙위원으로 활동했던 S장로는 “교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학력이 아니라 뛰어난 인품과 영성, 깊이 있는 설교”라면서 “목회자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신대원 이상의 학위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교인들은 목회자들의 박사학위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당회도 이런 생각에 동의했기 때문에 후임자를 모실 때 이력서조차 받지 않았다”면서 “대신 청빙위원들이 평판이 좋은 젊은 목회자의 교회를 몰래 찾아가 새벽기도회부터 금요철야 예배까지 참석한 뒤 종합평가를 하고 후임목회자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백상현 박재찬 기자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