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긴급조치 1·2·9호 위헌… 기본권 침해”
입력 2013-03-21 17:38 수정 2013-03-21 22:43
헌법재판소는 21일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에서 1974∼75년 발효됐던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재판관 8인 전원 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발동된 지 40년 만이다. 위기 시 국민 기본권 제한을 명시한 유신헌법 53조의 위헌 여부는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 1000여명의 재심 청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유신헌법 위헌성 지적=헌재가 선고한 사건은 오종상(72)씨 등 긴급조치 피해자 6명이 2010년 낸 3건의 헌법소원이다. 오씨는 74년 버스 안에서 한 여고생에게 정부시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헌재는 긴급조치 1·2호에 대해 “국민의 참정권,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 등 기본권을 제한·침해한다”고 밝혔다. 긴급조치 1·2호는 유신헌법 비방 등을 금지하고, 위반 시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한다는 내용이다.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헌법개정 주체인 국민의 주권행사를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 9호는 집회·시위 등에서 헌법 비판 등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규정이다. 검찰은 앞으로 긴급조치 관련 재심사건에 대해 무죄를 구형하기로 했다.
헌재는 유신헌법 53조에 대해 긴급조치 발령의 근거규정일 뿐 심판 청구인의 재판에 직접 적용된 규정이 아니라며 판단 대상에서 제외했다. 헌재가 헌법이 아닌 위헌법률 심사기관임을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결정문에서 “유신헌법 일부 조항은 국민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다”며 유신헌법의 위헌성을 분명히 지적했다.
◇헌법적 과거사 청산=헌재의 결정은 유신체제에서 발동된 긴급조치가 위헌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과거사를 반성하고 청산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는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내용으로 남용되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개헌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법률적으로 헌재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 긴급조치에 대해 위헌심사권을 갖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과거 유신체제에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피해자들이 재심 소송을 통해 일괄적으로 구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오씨 등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법원에 재심청구를 했고 법원도 건별로 판단해 왔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피해자는 모두 1140명, 사건은 585건이다.
긴급조치 혐의로 구금됐거나 실형을 살았던 이들은 형사보상도 받을 수 있다. 재심청구를 통해 무죄가 확정되면 국가는 구금 일수에 따라 피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대법원은 2011년 3월 긴급조치 위반 혐의 등으로 3년 동안 복역했던 오씨의 형사보상 청구사건에서 국가는 1억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헌재 결정에 대한 입장을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