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모곡 ‘서시’로 해줘, ‘화개장터’ 말고… 4월 3∼4일 단독 콘서트 준비하는 가수 조영남
입력 2013-03-21 17:30 수정 2013-03-21 22:13
그가 ‘모란동백’을 부를 즈음 남도 남·서해안 곳곳에서 선홍색 동백이 서서히 질 것이다.
‘동백은 벌써 지고 없는데/ …상냥한 동백아가씨/ 꿈속에 웃고 있네/ 세상은 바람 불고 덧없어라/ 나 어느 바다에 떠돌다 떠돌다…’
올해 데뷔 45주년을 맞은 가수 조영남(68)이 자신의 노래 ‘모란동백’을 다음 달 3∼4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부른다. ‘불후의 명곡’이라는 타이틀로 여는 단독 콘서트로 60인조 오케스트라와 20여명의 합창단이 함께 꾸민다. 그를 지난 14일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만났다.
“아무래도 계절상 이 노래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하(75·소설가) 형이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죠. 제가 이 곡에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을 빼앗겼어요. 발표한 지 10여년 됐는데 최근 몇 년 인기곡이 된 게 신기해요. 마음을 울리는 곡은 질긴 생명력이 있어요. 팬들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짓는 경우를 종종 봐요.”
MC 강석과 임백천은 ‘모란동백’의 ‘광팬’이라고 했다. 강석은 기분이 좋거나 우울하면 그에게 전화를 걸어 “형, 이렇게 부르면 되죠. 좋아도 너무 좋아요. 죽겠어요”라고 한다는 것. “모란과 동백꽃에는 우리의 맺힌 정서가 담겨 있어 그렇다”고 조영남은 말했다.
이번 콘서트에서 부를 노래는 자신의 작사곡 ‘딜라일라’를 비롯해 20여곡. 시인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인 ‘서시(序詩)’와
‘어메이징 아리랑’에 방점을 두고 있다. ‘서시’는 ‘모란동백’과 함께 자신이 죽은 후 친구들이 장례식장에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노래다. “근데, 이 친구들 분명 ‘화개장터’ 부르려고 하겠죠? 그 노래 부르면 분위기 좀 웃긴데 제가 말릴 방법이 없네요”하며 그 특유의 털털함으로 얘기했다. 그가 지켜본 장례식장 추모곡은 고(故) 황금심의 ‘알뜰한 당신’, 고운봉의 ‘울려고 내가 왔던가’ 등이었다. 고인들의 대표곡이었던 셈.
“엔딩 곡은 ‘아리랑’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한곡처럼 불러요. 두 노래의 몇 소절이 거의 같죠. 전혀 다른 문화에서 나온 곡인데도 말이죠. 두 노래가 기기묘묘하게 코드가 맞아 떨어져요.”
공연을 앞두고 있는데 매일 준비하느냐고 했더니 “안 해요”라고 말했다. 실력과 입심으로 평생 ‘예술광인’으로 살아온 조영남다운 자세다. 실제로 연습할 것 같지도 않았다. 가수 겸 화가인 그는 이날에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전시되고 있는 자신의 그림전 작품을 만지고 있었다.
콘서트 우정 출연자는 가수 이장희와 소향이다. 이장희는 품앗이했으니 자기 무대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한데 소향은? 복음성가(CCM) 가수 출신인 그의 출연을 두고 조영남은 “그게 있어서…”라고 말했다. 어릴 적 교회 성가대에서 음악을 익히고, 청년 시절엔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교를 나온 그에겐 늘 부채처럼 남은 ‘그것’이 있다.
그는 ‘그것’, 즉 구원과 삶의 문제를 놓고 이젤 앞에 앉아 묵상한다. 이날도 그는 첨탑이 우뚝한 예배당 작품을 덧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림 위에 이렇게 썼다.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어느 교회 문간에서는 뚱뚱보 카포네가 볼에 상흔을 씰룩거리면서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이상 작품 ‘오감도’ 구절이었다.
그러면서 3∼4년 전 작고한 소위 ‘여친’(지인인 유명 여성 인사)을 그리워하며 아쉬움에 잠기기도 한다. 김점선(화가) 장영희(서강대 교수) 최윤희(‘행복’ 강사)씨 등이다. “아우라 넘치는 친구들인데 그들과 더는 ‘행복 비즈니스’를 함께 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모란동백’을 뼛속 깊이 불러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