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한라산 노루

입력 2013-03-21 17:27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DVD타이틀을 사놓고 마음 동할 때마다 본다. 그중 제일 좋아하는 것이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이다. 지금까지 열댓 번 정도 봤을까. 그만 질릴 만도 한데 언제 봐도 너구리들 이야기에 쏙 빠져들게 된다.

도쿄 근방의 다마(多摩) 구릉지의 너구리들은 신도시 개발 계획으로 인해 그들의 숲이 파괴되자 너구리 변신술을 되살려 다양한 방해 작전을 펼친다. 희생 너구리가 속출하는 가운데에도 공사는 계속되고 너구리들은 마지막으로 인간들에게 산을 돌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이를 외면하고 결국 너구리들은 ‘인간은 정말 못 당하겠다’고 탄식하며 숲을 떠나게 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살아남은 너구리들이 만신창이가 된 고향 숲을 푸르고 울창했던 예전 모습으로 잠깐 ‘변신’시키는 부분인데, 사력을 다해 되살린 숲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자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너구리들의 모습이 가슴에 박혀 한동안 시도 때도 없이 코끝이 찡하곤 했다.

지난달 말, 한라산 노루가 한시적 유해동물로 지정되었다. 7월부터 3년간 올무나 총기를 사용한 포획이 허용된다고 한다. 천적이 사라지고, 오랜 보호활동의 결과 늘어난 노루들이 농가에 피해를 입혀 개체수 조정이 불가피하다 하니 농민들의 생계를 생각하면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겠다 싶다.

그런데 도대체 왜 고지대 동물인 노루가 민가가 있는 저지대로 내려왔을까? 그저 개체수가 늘어났기 때문일까. 환경단체의 말에 따르면 골프장과 리조트 등 관광지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가 주원인이라 한다. 사람에게 살 곳을 빼앗겨 산 아래까지 밀려왔건만 그 땅도 내 땅이라고 물러나라 한다니 어째 좀 염치가 없는 것 같다. 유해동물이라 타 지역 이주도 불가하다는데 적정개체수인 3300마리만 살고 나머지 1만7000여 마리는 어쩌란 말인가. 살 곳을 뺏었으면 살 곳을 마련해 주는 게 생태계에 대한 당연한 도리요 책무가 아닌가.

사진 속 노루를 보니 숲을 그리며 울던 너구리들의 처연한 모습이 겹쳐 보였다. 도시 너구리 세이자에몬이 물었다. “개발 때문에 너구리나 여우가 없어졌잖아요? 그만두실 순 없나요? 여우나 너구리는 변신술로 숨지만, 토끼나 족제비는 어떻게 하나요? 그냥 사라져야 하나요?” 죽이고 없애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되살릴 방법이 인간에겐 없다. 그래서 무섭다.

김희성 (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