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역사 공부는 퍼즐맞추기… 빠진 조각 채워야죠”… 33년만에 ‘먼나라 이웃나라’ 완간 이원복
입력 2013-03-21 17:42
35세에 시작한 일이 67세에 끝났으니 거의 평생을 바치다시피 했다. 1981년 신문만화로 시작했던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디자인학과)의 교양학습만화 ‘먼나라 이웃나라’(김영사)가 최근 출간된 15번째 책 ‘에스파냐’(스페인) 편을 끝으로 33년 대장정을 끝냈다. 유럽 등 선진국들의 역사와 사회상을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준 이 책은 87년 출간 이후 해외여행 자유화 붐을 타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21일 서울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완간 기자간담회를 가진 이 교수는 “실감이 안 난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 책은 네 차례 개정판을 내며 1700만부 이상 팔렸다. 일렬로 늘여놓으면 4326㎞나 돼 서울∼부산을 5회 왕복할 수 있는 거리. 하지만 처음엔 찬밥이었다.
“마침 신혼이라 돈이 궁해 연재했던 걸 묶어 단행본으로 내고 싶었지요. 계몽사 사장으로 있는 친구를 찾아가 부탁했는데, ‘계몽사가 어떻게 만화를 내냐’며 거절하지 뭡니까.” 당시 덕성여대 동료 교수조차도 “교수가 만화 좀 안 그리면 안 되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먼나라 이웃나라’는 교양학습만화의 붐을 견인했다. 이후 ‘그리스 로마신화’ ‘마법천자문’ 등 1000만부 이상 팔린 대박 만화가 줄줄이 탄생했다.
이 시리즈는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6개국과 한국, 중국(2권), 일본(2권), 미국(3권), 에스파냐 편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한국 편은 외국 대사관 직원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미국 편과 관련해선 “미국에 갔더니 우리나라 아이들이 미국 역대 대통령 이름을 미국 아이보다 더 좔좔 외워 거기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는 학부모들의 인사도 심심찮게 듣는다.
어떤 나라가 가장 힘들었을까. “당연히 우리나라 편이지요. 한국은 다들 전문가 아닙니까(웃음).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는 아직 ‘5·16’ 평가에 대해서도 정리되지 않아 항의를 받을 수 있고….” 그래서 “가급적 우리에게는 별것 아니지만 외국인에겐 신기하게 비칠 수 있는 걸 중심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중립 원칙을 견지했다.
마지막 에스파냐 편을 통해 배울 점은? 그는 “에스파냐는 세계 역사에서 처음으로 글로벌화를 이뤘지만 가톨릭 왕국으로 통일되면서 순혈주의를 한 게 사실상 몰락을 이끌었다”며 “당시 유대인, 무슬림을 모두 쫓아냈는데 그러다보니 유대인이 했던 의사 유통 금융 등 전문직 분야, 무슬림이 맡았던 3D 업종의 기반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사회도 동남아 이주노동자가 많아지면서 다문화사회가 됐지만 외국인 혐오증도 생겨나고 있는데 에스파냐 몰락을 보면서 배워야 할 점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완간으로 끝나지만 역사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현재 3권을 출간한 ‘가로세로 세계사’(김영사)를 통해 계속 만날 수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빵모자를 쓴 내레이터 혼자 설명하는 것과 달리, 이 만화는 성격이 다른 ‘가로’ ‘세로’ ‘바로’라는 세 아이를 등장시켜 다양한 역사 해석을 보여준다.
주 독자층인 청소년에게 “역사는 퍼즐 맞추기다. 퍼즐 조각이 많아야 좋은 그림이 나온다”면서 쏠리지 않는 역사 공부를 주문했다. 그는 “그런데 우리의 역사 교육은 일제 식민지 교육 여파로 지나치게 영·미, 프랑스 중심이다. 서양사에서 대제국을 형성했던 이슬람 역사를 소홀히 하는 게 그런 예”라고 했다. ‘가로세로 세계사’에서는 제3세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