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애슐리 박 (6) “주님, 인생 십일조를 선교 위해 바치겠습니다”
입력 2013-03-21 17:01 수정 2013-03-21 21:20
김춘근 장로님을 만난 뒤 남편은 JAMA에 헌신하게 됐고 나는 교회에서 청년들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정신과 레지던트와 펠로십을 마치고 미시간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남편은 주말이 되면 미국을 두루 다니며 한국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의 마음에는 온 가족이 함께 미국 땅을 밟으며 기도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생겼고, 때로는 우리 인생(시간)의 십일조를 선교를 위해 드리겠다고 서원하기도 했다.
그런데 진심으로 드렸던 우리의 서원은 그저 마음에 불과할 뿐 현실은 우리에게 단 몇 개월의 시간도 자유롭게 허락지 않았다. 남편은 여느 미국 학생들처럼 학부와 의과대학의 학비를 융자받아 공부했는데 졸업 후 매달 그것을 갚느라 힘들었다. 1년 혹은 몇 개월 직장을 쉰다는 것이 도저히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우리 부부는 형편이 되면 앤아버를 방문하는 선교사님들을 우리 집에 모시고 교제하곤 했다. 그렇게 알게 된 우간다의 배상호 선교사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미국으로 사역을 옮겨 2004년 온 가족이 미국으로 왔다. 우리 집과는 불과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살게 됐다. 10년 넘게 우간다에 살았던 선교사님 가족은 미국의 으리으리한 집들과 좋은 차들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그 감격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총명하신 박숙경 사모님은 미국에서의 삶이 실상은 자유가 없음을 금세 꿰뚫어 보셨다. 자유! 내 인생의 시간을 마음대로 계획할 수 있는 자유가 정말 내게도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마치 족쇄를 차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마음으로 서원하고 입으로 선포하지만 실상 나의 발은 주님을 위해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전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던 도전이 기억났다. ‘세상을 거꾸로 살라.’ 도대체 무엇을 거꾸로 살아야 하나? 주님은 내게 세상의 빚, 즉 크레디트(융자 등 신용시스템)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다 보니 미국생활 10여년 동안 어느새 많은 빚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말하는 세상의 빚이었다. 자동차를 사고 집을 사고, 심지어 자녀 대학 보내는 것도 대부분 빚에 의존하는 것이 미국의 삶인데, 그러면 하나님 이제 어떤 방법으로 살죠? 아, 미국을 떠나 살아야 할까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빚에 의존하지 않고 심플하게 사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에 일단 순종하기로 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롬 12:2)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모든 크레디트 카드를 잘라 휴지통에 버리고 이제는 크레디트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오히려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이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밀려오는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때 박 사모님이 생각났다. 전화를 든 채 할말을 잃고 있는 내게 “자매님이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돼요.” 그리고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내가 지금 무슨 길을 가고 있지? 나도 잘 모르지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야 한다는 사모님의 말씀에 나는 동의하고 있었다.
거의 1년이 되는 힘든 시간 동안 나는 사모님께 두 번 정도 전화를 드렸다. 그때마다 사모님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영혼이 기진맥진한 내게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 세상을 거꾸로 살기 위해 몸부림친 그 기간 동안 사모님의 존재는 내게 마치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와 같았다. 뒤돌아보니 그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사모님의 믿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족쇄로부터 자유한 나의 발은 이제 하나님이 이끄시는 곳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기 시작했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