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밥 우드워드
입력 2013-03-21 18:58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쳐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싱턴 포스트 부편집인 밥 우드워드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퀘스터(정부의 자동 지출삭감)를 이유로 항공모함 배치 등 군사 조치를 유보한 것을 두고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라며 맹비난한 게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미국 언론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우드워드가 워낙 거물이라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우드워드가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린 것은 오바마를 방어하려는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의장 스펄링과의 설전이었다. 우드워드는 스펄링이 ‘후회할 것’이라는 언사를 써가며 자신을 위협했다고 주장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이메일 공개 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진 것이다. 게다가 이전부터 우드워드를 별로 인정하지 않던 저술가 맥스 홀런드가 뉴스위크지를 통해 결정타를 날려 버렸다.
홀런드는 우드워드가 동료인 칼 번스타인과 1973년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 비화를 담은 책 ‘대통령의 음모’를 높이 평가하긴 했다. 그러나 이 책이 뉴저널리즘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가령 워터게이트 담당 취재부장도 이 책의 일부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고 거들었다고 홀런드는 밝혔다. 저널리즘의 사실성과 소설적인 분위기를 동원하는 뉴저널리즘의 한계로 볼 수도 있지만 그의 평가는 냉정했다.
또 워터게이트 취재 과정에서 딥스로트(내부 고발자)로 알려진 펠트가 사실은 FBI 국장이 되려는 자신의 상관을 곤란에 빠뜨리려고 제보한 것이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 것은 아니란 사실도 강조했다. 말하자면 우드워드가 취재를 열심히 해 특종을 한 게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드워드는 이후 ‘오손 웰즈 증후군’에 빠졌다는 것이 홀런드의 주장이다. 배우 겸 감독인 웰즈는 젊은 나이에 ‘시민 케인’ 같은 명작을 만들어 성공한 이후 다시는 명작을 만들지 못했다.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우리 언론은 아직 우드워드처럼 박근혜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리지는 않았다. 허니문 기간이라 자제하는 것 같다. 어쨌든 펜 하나로 막강한 미국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우드워드가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는 소식이 우울하긴 하다. 그러나 지난 주말 CBS방송에 나온 그는 갈등 해소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과 스펄링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다. 배짱 있는 행동으로 봐야 하나,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는 것으로 봐야 하나.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