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이선우] 정부조직 개편 협상 유감

입력 2013-03-21 18:59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부조직을 바꾸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이론상으로는 세월이 흐르면 그에 적합한 조직으로 거듭나는 것이 맞지만, 조직개편으로 인하여 겪는 공직사회의 혼란과 비용도 고려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조직개편 시도는 여느 정권들과는 다르게 요란하고 거칠었다. 왜 그랬을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여야정당 대표들의 협상력 부재에 있었을 것이다. 야당은 여당을 상대하기보다 대통령을 협상 난항의 중심으로 비난하였고, 여당은 국민을 대상으로 야당의 양보를 촉구하였다. 원래 정치가 여론몰이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길거리 곳곳에 여당 명의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읍소하는 현수막이 나붙는 촌극은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브 코헨(Herb Cohen)이라는 협상전문가는 세상에서 가장 협상하기 어려운 상대가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사람이나 정신이상자 아니면 바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은 서로를 이런 부류로 생각지도 않을 것이고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성을 자랑하는 지적능력을 가진 민족이며, 수많은 국난도 지혜롭게 극복하여 온 유권자들에 의하여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인가? 여야 국회의원들, 특히 지도부간의 감정충돌이 갈등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감정싸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법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잉태되기 시작하였다. 야당의 대표도 모르는, 심지어는 인수위원들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발표 전, 인수위원장이라도 야당대표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게팅 투 예스(Getting To Yes)’의 저자 피셔(Fisher)는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fact) 중심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수위의 활동을 단순한 행정적 행위라고 규정하더라도 대부분의 행정 역시 정치적 과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이때부터 여야 상호간 신뢰형성은 물론 야당과 대통령간의 상호존중심은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두 번째 문제는 여당대표들에게 부여된 협상의 범위와 폭에 대한 이해정도였다. 어느 정도의 전권을 가지고 협상에 임할 것인가는 협상의 기본이지만 여당의 협상단에는 진정으로 새 정부가 원하는 조직개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 이는 결국 야당으로 하여금 대통령을 협상의 정점으로 생각토록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세 번째 문제는 협상의 쟁점사항이 잘못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SO, 즉 종합유선방송업무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이 협상의 주요내용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러 쟁점들 중 하나에 불과했음에도 방송의 중립성이라는 정치적 시각에서만 접근하여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였던 것이다. 협상의 초점은 새 정부가 들어서는 매 5년마다 반복되는 대규모의 정부조직개편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에 맞추어져야 했다.

이번 정부조직개편은 여야협상과정에서 미디어렙법 2라운드 논쟁의 성격을 띠고 미래부의 SO 업무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탓에 정말로 주요한 의제들을 다루지도 못하였다. 즉 미래부가 5년 후에도 존재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있어야 했고, 산업통상자원부가 관장하게 되는 에너지자원의 개발과 관리권에 대해 환경부의 견제기능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성 문제만큼 중요했었다. 또 여성가족부에서 여성이란 명칭을 부처의 영어 이름처럼 양성평등으로 변경하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한번쯤은 남성유권자들의 마음을 달래어 준다는 차원에서 거론되었어야 했다. 정치협상의 기본은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이고, 그 원하는 것의 중심에는 정당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국민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선우(한국방송통신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