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를 지운다 “우리는 환경 산악인”…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들의 특별한 출동

입력 2013-03-20 19:37 수정 2013-03-20 14:04


“바위 낙서만 봐도 어떻게 지울지 답이 나와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산 정상 곳곳의 바위에서 붉은 페인트로 내용을 알 수 없는 낙서가 발견됐다. 낙서가 새겨졌다는 신고를 받자마자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10여명은 관악산으로 서둘러 달려갔다. ‘환경 산악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전국 곳곳의 산을 돌아다니며 바위의 낙서를 지우고, 훼손된 자연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한다.

이들의 가방에는 산행에 필요한 도구가 아니라 페인트를 지우는 화학약품, 친환경 페인트, 붓 등이 들어 있었다. ‘3시간 넘는 작업 끝에 붉은 페인트를 지우고, 바위 본연의 색깔과 맞추기 위해 깨끗이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된 작업 끝에 낙서는 지워졌고 지나가던 등산객들은 박수를 치기도 했다.

이 모임을 만든 경규양(57)씨는 20년 전부터 환경 산악 활동을 하고 있다. 경씨는 “전국에 있는 아름다운 산들이 사람 손에 의해 훼손되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산을 훼손하는 수법도 진화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술을 전공한 경씨는 환경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색채 일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바위 낙서만 봐도 새겨진 지 얼마나 지났는지, 어떻게 지워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경씨 등이 처음 환경 산악 활동을 할 당시에는 대부분 칼로 바위를 파내 문구를 입력하는 낙서들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구하기 쉬운 스프레이형 페인트를 이용한 낙서가 많아졌다. 사람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산 정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복을 빌거나 종교에 관련된 문구가 대부분이다. 또 살아있는 생명체인 나무에 낙서를 하는 이들도 생겨 지우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은 물감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회복시키기 위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낙서가 희미해져도 이미 훼손된 바위에는 흔적이 남는다. 또 오히려 낙서를 무리하게 지우다 바위가 더 심하게 훼손될 수도 있어 이 작업은 늘 긴장의 연속이다. 경씨는 “산에 낙서를 해 자연을 훼손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산행 인구가 늘어난 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