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 유로존 3개 섬나라 공통점… 금융산업 키우려다 망했다
입력 2013-03-20 18:11 수정 2013-03-21 00:33
키프로스 의회가 구제금융 협상안의 비준을 거부하면서 키프로스 재정위기 사태가 다시 미궁에 빠졌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아이슬란드를 시작으로 아일랜드를 거쳐 이번 키프로스까지 유독 섬나라들에서 재정위기 도미노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 과도한 금융산업의 팽창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이렇다 할 자원이 없어 국가의 성장 동력을 금융에서 찾았던 섬나라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다.
◇섬나라 재정위기 도미노의 원인은=세 나라의 위기가 전개되는 과정은 차이가 있다. 아이슬란드는 고금리 정책으로 해외 자본을 끌어들인 뒤 다시 해외의 고위험 상품에 장기 투자를 하면서 금융위기 후 첫 번째 희생양이 됐다. 아일랜드는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은행 부문의 부실이 정부 재정악화로 전이된 사례다. 관광 위주의 산업구조에서 정책적으로 금융 산업을 키워 왔던 키프로스는 이웃 그리스가 휘청거리면서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리스가 재정위기를 겪기 직전인 2010년 키프로스의 은행권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는 키프로스 국내총생산(GDP)의 1.6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정은 달라도 세 나라의 공통점은 있다. 경제 규모에 비해 금융 산업의 비중이 과도하게 커 외부의 충격을 피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유럽 내 경제 싱크탱크 오픈유럽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아일랜드와 키프로스의 은행권 자산은 각각 GDP의 750%에 이른다. 아이슬란드도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무렵 은행권 자산 비율은 GDP의 800% 가까이 급증했다.
키프로스 금융위기에는 ‘빅2’로 불리는 키프로스은행과 라이키은행 간의 과도한 경쟁도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FT는 두 은행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위험 자산에 무리하게 투자하다 막대한 손실을 보며 위기를 자초했다고 전했다.
◇구제금융 협상안 비준 거부 이후는=예금 과세를 골자로 한 구제금융 협상안에 대한 19일(현지 시간) 의회의 표결 결과는 반대 36표, 기권 19표였다. 정부는 기존 안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 예금 잔액 2만 유로 이하는 과세를 취소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출했지만 찬성이 한 표도 없었다. 키프로스는 구제금융에 대한 재협상안을 제출하든지 아니면 별도의 재원 조달 방안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둘 다 실패한다면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가 될 수 있다.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독일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면서 새 협상안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구제금융을 위해서는 키프로스가 금융시장에 복귀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신들은 결국 문제 해결의 열쇠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할리스 사리스 키프로스 재무장관은 20일 모스크바로 날아가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을 만나 추가 차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키프로스 은행권에는 약 200억 유로로 추정되는 러시아계 자금이 예치돼 있다. 키프로스의 금융 붕괴는 러시아에도 큰 손실을 안겨줄 수 있다. 뉴욕타임스 등은 러시아 국영천연가스회사 가스프롬이 키프로스 남부 연안에 매장된 천연가스 개발권을 갖는 조건으로 키프로스를 직접 지원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