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교환·환불 NO” 소비자 보호 뒷전
입력 2013-03-20 17:32
지난해 12월 새 차를 구입한 이모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속도로 위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전조등이 켜지지 않았고 계기판이 갑자기 꺼졌다. 휴게소에서 잠시 쉰 뒤 시동을 걸었지만 이번에는 RPM이 2500 이상으로 치솟았다. 차에서 거친 소음도 났다. 이씨는 다섯 차례 수리를 받았지만 이상이 계속되자 제조사에 차량 교환을 요구했다. 제조사는 “교환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함이 있는 국산 신차를 교환 또는 환불받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규정이 없어서다.
민간 소비자문제연구소 ‘컨슈머리서치’는 지난해 소비자고발센터 등에 접수된 자동차 관련 피해 1252건 가운데 구매 1년 이내 차량 관련 불만이 10.5%인 131건이라고 밝혔다.
신차 관련 불만은 주로 안전과 관련된 내용이다. ‘도로 주행 중 시동이 꺼졌다’ ‘시동이 안 걸린다’ ‘주행 중 운전대가 잠겼다’ ‘RPM이 치솟았다’ 등이다. 심한 차체 떨림, 제어장치 이상, 배터리와 타이어 등 부품 하자도 불만으로 제기됐다. 신차가 아닌 차량의 피해 신고는 주로 과다한 수리비용이나 부품 수급 지연과 관련된 것이다.
신차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교환이나 환불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체의 5% 수준이다. 신차 교환 및 환불이 어려운 이유는 관련 규정이 일반 공산품에 적용되는 공정거래위원회 고시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따르기 때문이다. 현재 불량 신차 교환 및 환불기준은 ‘차량 인도일로부터 1개월 안에 주행 및 안전도 등에 관한 중대 결함이 2차례 이상 발생시’이다. 1년 안에 중대 결함과 관련해 동일한 하자가 4차례 이상 발생했을 때도 교환 또는 환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는 작은 결함이 운전자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어 일반 공산품과 같은 보상 기준을 적용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도 없다.
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신차에서 결함이 발견됐을 때 교환 및 환불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 미 캘리포니아 주는 1975년 제정된 ‘레몬법’에 따라 일반 고장으로 4번 이상 수리를 받았으나 다시 문제가 발생하면 제조사가 차량을 바꿔주거나 환불하도록 정해 놨다. 환불 시 그동안 소비자가 수리에 쓴 돈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컨슈머리서치 관계자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중대 결함 기준조차 명시하지 않아 소비자가 실질적 보상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