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키프로스
입력 2013-03-20 19:11
베네치아공화국의 흑인 장군 오셀로는 자신을 시기하는 부하 이야고의 술수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으로 오해하곤 아내를 죽인다. 그러나 이내 부하의 계략이었다는 게 밝혀지자 오셀로는 죄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랑과 질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Othello)의 주무대는 키프로스다. 오스만투르크 함대가 키프로스로 향하자 오셀로가 섬을 지키기 위해 아내와 도착한 곳이 키프로스였다.
남한의 10분의 1정도 크기인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의 풍광은 눈부시다. 하지만 키프로스의 역사는 오셀로처럼 비극적이다. 전략적 가치와 자원이 풍부해 오래전부터 외세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비잔틴 제국, 오스만투르크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960년 8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음에도 국민들이 그리스계와 터키계로 양분돼 유혈충돌을 벌인 것은 식민지배의 산물이다. 급기야 1974년 그리스 지원을 받은 그리스계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에 맞서 터키가 터키계 주민 보호를 명분으로 군대를 보내 북부 지역을 장악했다. 그리고 남과 북에서 각자 정권을 수립, 주권국가를 천명했다. 한반도처럼 키프로스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순간이다.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통행이 끊긴 수도 니코시아의 ‘레드라’ 거리는 분단의 상징이 돼버렸다.
키프로스의 대표국은 남키프로스다. 터키를 제외한 모든 국가들의 입장이 그렇다. 유엔과 유럽연합(EU)에 남키프로스만 가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키프로스가 요즘 주목받고 있다. EU의 지도자들이 금융위기에 처한 키프로스에 100억 유로(14조5000억원)를 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키프로스 내 은행 예금자들에게 고통을 분담하는 조건을 달자 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졌고, 곧바로 뱅크런이 유럽으로 확산돼 3차 유로존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키프로스 의회는 구제금융 협상안을 부결시켰다. EU도 파문을 진정시키려 애쓰고 있다. 어떻게 결론 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위태위태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1월과 2011년 10월 두 차례 남북 키프로스 통일협상을 주선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키프로스가 일찍 통일을 달성했다면 구제금융을 안 받아도 되지 않았을까. 키프로스가 경제난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길 기대한다. 나아가 평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조속히 통일을 이뤘으면 좋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