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화] 더스틴 호프만 감독 데뷔작 ‘콰르텟’

입력 2013-03-20 17:23


은퇴한 음악가들 모여 사는 요양원

그들의 ‘콰르텟(4중창)’ 다시 무대 오를까


늙음은 슬프다. 몸이 늙으면 마음은 약해진다. 화려했던 옛 기억은 아직 생생하지만 그뿐이다. 더 이상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다. 무릎이 아파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아침에 뭐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한 형편이 됐을 뿐. 영화 ‘콰르텟’(감독 더스틴 호프만)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이는 영화다.

영국의 한 고풍스러운 건물. 이곳은 은퇴한 음악가들이 모여 사는 요양원 ‘비첨하우스’다. 한때 세계적 명성을 날리던 오페라 가수들이지만 지금은 몸이 아프거나 치매로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

어느 날 이곳에 최정상급 소프라노 진(매기 스미스)이 입주한다. ‘커튼콜을 12번 이하로 받은 적이 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진. 하지만 은퇴 후 자신감을 잃고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한편 재정난에 빠진 비첨하우스를 지키기 위해 갈라 콘서트가 추진된다. 과거 오페라 사상 최고의 드림팀으로 명성을 떨쳤던 레지날드(톰 커트니) 윌프(빌리 코널리) 씨씨(폴린 콜린스)가 진에게 ‘콰르텟(4중창)’ 공연을 제안하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한다. 이들의 콰르텟 공연이 무대에 올려질지, 젊은 시절 오해로 헤어진 레지날드와 진은 화해하게 될지가 영화 감상 포인트.

영화는 따뜻하고 유쾌하고 코믹하다. 때론 뭉클하고 눈물이 핑 돈다. 연륜 깊은 배우들의 연기는 실제 삶이 투영된 듯 진심이 배어난다. 중장년층은 물론 젊은 관객도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음악.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중 ‘축제의 노래’로 경쾌하게 시작하는 오프닝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 보케리니의 미뉴에트 등 친근한 클래식 곡이 귀를 즐겁게 한다.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의 오페라 곡도 등장한다. 특히 피날레를 장식하는 콰르텟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가씨여’는 베르디의 ‘리골레토’에 나오는 유명한 곡이다. 비첨하우스는 베르디가 1896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세운 음악가의 집을 모델로 했다.

‘콰르텟’은 할리우드 명배우로 올해 76세가 된 더스틴 호프만의 감독 데뷔작이다. 세련되고 매끄러운 연출 실력을 보여준다. 호프만은 “평소 대본을 읽을 때는 굉장히 냉정한 편이다. 그런데 이 대본을 보고는 눈물이 흘렀다. 삶에 대한 관대한 시선과 나이 듦에 대한 낙관적인 자세가 좋았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난 1월 미국에서 개봉해 10주째 장기 흥행 중이다. 12세가. 28일 개봉.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