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애슐리 박 (5) 동료들 앞에서 ‘회개 고백’ 하자 용서와 새 삶이

입력 2013-03-20 17:23


1998년 가을, 클리블랜드에 사시던 시아주버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알래스카의 요셉’으로 불리는 분이 클리블랜드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꼭 와보라는 것이었다. 우리 부부는 목사님, 교회 청년들과 함께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시아주버님이 말씀하신 그분은 대학 교수였다. 알래스카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평판을 받는 까닭에 알래스카의 요셉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춘근 장로님이셨다. 그는 미국의 영적 각성을 위한 기도운동인 JAMA를 시작했고 미국에 이민 온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미국을 더 위대한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다. 불처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 후 그는 자신의 인생스토리를 나누었는데 그의 간증은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장로님은 가난한 유학생으로 미국에 와 피땀 어린 노력 끝에 대학 교수가 됐다. 수고한 열매를 누리기 시작했을 즈음 그는 중병에 걸렸다.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하나님 앞에 다시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지은 죄목들을 수십 장의 종이에 촘촘히 써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용서를 구할 정도로 철저한 회개를 했다.

그의 간증을 듣는 동안 나의 내면은 부르짖었다. ‘하나님 저도 회개하고 싶어요.’ 그러자 주님은 그동안 ‘공부’라는 우상이 내 안에 깊이 숨어 있었음을 드러내셨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8) 그날 진정으로 회개하며 이제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두지 않으리라 고백했다. 남편에게도 그동안 분노의 마음을 가졌던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하나님과 남편에게 회개를 하고 나자 수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불면증이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고 우울증에서도 벗어났다.

그 다음 주 교회 청년부 앞에서 회개의 고백을 했다. 수년 동안 꽁꽁 감춰 두었던 죄를 다 떨쳐 버리고 이제는 정말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간증을 마치자, 뜻밖의 고백을 듣고 난 학생들은 하나둘씩 내게 다가와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듣고 난 그들이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내게 사랑을 부어주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난 99년 1월부터 목사님은 나를 청년부 담당으로 임명하셨다. 학생으로서 실패한 나에게 청년학생들을 맡기신 것이다.

학생의 신분을 벗어나 이제 어린아이를 둔 가정주부가 된 나의 30대의 삶은 이 귀한 젊은이들과 함께하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그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그 누구보다도 훌륭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길 소망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선순위 넘버원이 돼야 한다는 것을 또한 잊지 않기를 원했다. 공부가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공부를 정복하고 다스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기를 기원했다. 이 사실을 늘 기억하도록 나의 존재가 그들에게 거울이 되기를 소원했다.

하나님은 앤아버의 가장 작은 교회의 청년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시작하셨다. 그들은 시간을 구별해 캠퍼스에 모여 기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교회를 섬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지역교회들을 섬기고 교회들이 연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 또 그들은 학업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나타냈고 졸업 후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공부만 하기도 벅찬 그들에게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섬기는 것이 기쁨이 돼가고 있는 사이, 하나님은 그분의 방법대로 우리 가족을 준비시키시고 있었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