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굳세어라 개똥아
입력 2013-03-19 20:34
지난주 토요일, 작가 친구 셋과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동화작가인 지인이 문경의 도예가와 모종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 동행한 것이다. 풍광 좋은 산 속 호젓한 곳에 위치한 단아한 집과 독특한 구상의 예술품, 작가의 아내가 차린 맛깔스런 밥상에다 지인들의 재담까지 모든 게 감동이었다.
정작 우리를 사로잡은 것은 도예가의 딸 개똥이였다. 유치원에다 과외까지 받느라 벌써부터 바빠진 대한민국 평균 여섯 살들과 다르게 사는 개똥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권정생 동화 ‘강아지 똥’에 매료된 엄마가 이웃에게 감동을 전하라며 안겼다는 별명을 아이가 스스럼없이 받아들인 것부터가 신기했다.
아랫동네와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개똥이네 집은 TV도 안 나오고 전화선 연결도 안 되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 다행히 인근 과수원에서 끌어다 놓은 전기가 있어 불을 밝히고 지하수를 퍼 올린다. 방향을 잘 잡아야 터지는 스마트폰이 문명사회를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개똥이는 읍내 유치원에 다녀오면 아빠 엄마와 대화하거나 책을 읽는다. 그림도 그리고 종이가방과 스티커도 만들다가 심심하면 논두렁을 누비고 나지막한 산과 과수원을 오르내린다. 아랫동네로 이사 가고 싶지 않은지 묻자 수묵화 같은 산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게 좋아요”라고 당차게 답했다.
부모와 소통하고 자연을 벗 삼아 살면서 패스트푸드 대신 건강식을 먹는 개똥이.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에다 똑 부러지는 말솜씨를 자랑했다.
개똥이는 6시간 동안 통통 튀는 창의성으로 우리를 쉴 새 없이 지휘했다. 페이스북으로 우리의 얼굴과 이름을 익힌 개똥이가 “○○○ 작가님, 저를 그려보세요”라며 종이를 나눠주어 때 아닌 미술대회가 열렸고, 산책에다 발레발표회까지 다양한 놀이가 준비되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은 온통 개똥이 얘기였다. 엄마와 함께 간식을 만들어 상을 차리면서 어른들과 눈을 맞추고 자기 의견을 정확하게 피력하는 깜찍한 아이. 우리의 결론은 일치했다. 컴퓨터와 TV 앞에서 시들어 가는 도시 아이들을 창의력과 개성, 체력으로 무장한 개똥이가 다 물리칠 거라고.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