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오바마의 용인술

입력 2013-03-19 20:34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보노라면 포퓰리스트(populist·대중영합주의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자주 있다. 재정절벽, 시퀘스터(예산자동삭감 조치) 등 공화당과 대립각을 세우는 현안을 다룰 때 ‘장외전’을 선호하는 것이 뚜렷하다. 세금, 재정지출 등 주요 국정의제를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그 방식이 상당히 선동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정치를 잘 아는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연상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편 가르기’를 한다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비판에도 일리가 있다. 주요 지지층인 소수인종, 빈곤층과 중산층, 성적 소수자, 청년층을 의식한 정책이 자주 눈에 띄며 부유층을 과도하게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바마 열성 팬이 많지만 오바마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안티 오바마’도 적지 않다.

한마디로 당파성이 강하고 이념(ideology) 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고 세계 최강대국을 큰 과오 없이 이끌어가는 데는 이를 상쇄할 다른 자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사(人事)의 유연성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기용이다.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클린턴 전 장관과 오바마가 벌인 치열한 각축전을 아는 이들은 이듬해 오바마가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했을 때 깜짝 놀랐다고 한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두 사람 간 감정의 골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미 국방연구원(IDA)의 오공단 박사 같은 이는 오바마가 지난 4년간 가장 잘한 일이 클린턴을 기용한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최고의 수였다는 것이다. 이는 클린턴 장관의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연합을 맺은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와 오바마 지지층을 온건보수층으로까지 넓혔다. 이 결정은 지난 대선에서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후보가 오바마의 경제회복 실패를 물고 늘어져 1차 대선후보 TV토론회 후 오바마가 궁지에 몰렸을 때 그를 구원한 것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외교정책 담당자로서의 능력도 탁월했다는 평가다. 오바마는 클린턴을 장관에 임명하면서 외교정책의 전권과 국무부 인사권을 준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오바마는 그 약속을 지켰고, 클린턴은 미얀마를 개방하는 치적을 남겼다. 이는 결국 오바마의 업적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오바마가 재선 성공 뒤 미얀마를 방문, 양곤대학에서 강연할 때 대학생들은 “오바마”보다는 “클린턴”을 연호했다고 한다. 이를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던 오바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이라고 농담한 뒤 “이보다 더 감사할 수 없다”며 클린턴을 치하했다.

이러한 ‘빛나는 동행’은 오바마가 탁월한 인물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고, 또 ‘2인자’를 허용하는 유연성과 통 큰 리더십을 가졌기에 가능했다. 공화당 출신의 존 헤이글 국방장관을 기용한 데서도 오바마의 안목과 유연성을 확인하게 된다.

최근 한국 새 정부의 내각과 고위직 인선을 둘러싼 혼선을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의 인사 스타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2인자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박 대통령의 성향이 인사 혼선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을 두고 하는 말이다. 2인자의 성공이 결국 대통령의 성공이라는 것을 ‘오바마-클린턴’은 여실히 보여준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