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코드 인사’로 관치금융 재연하면 안 된다
입력 2013-03-19 20:32 수정 2013-03-19 20:35
금융권 공공기관장은 경영능력·전문성 보고 뽑아야
신제윤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금융권 공공기관장들의 물갈이 카드를 꺼냈다. 신 후보자는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새 정부의 국정철학, 전문성 등 두 가지를 보고 필요성이 있다면 금융권 공공기관장 교체를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신 후보자는 잔여 임기가 있어도 교체를 건의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신 후보자는 금융위에서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 공공기관장, 민간기업이지만 주인이 없는 금융기관 등을 대상으로 꼽았다. 이 기준으로 하면 산은금융지주 수출입은행 정책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공기업·공공기관, 정부가 주요 주주로 있는 우리금융지주 기업은행 등이 해당된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KB금융지주도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대대적인 공공기관장 물갈이 방침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각 부처 산하기관과 공공기관에 인사가 많을 텐데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임명해 달라”고 지시했다. 진통 끝에 열린 새 정부의 첫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물갈이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신 후보자의 발언은 금융당국의 수장이 될 경우 박 대통령의 인사 방침을 그대로 시행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신 후보자의 발언이 알려지자 “교체 통보를 받지는 않았지만 지침이 내려오면 따르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공공기관장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김용환 수출입은행장, 조준희 기업은행장 등은 대체로 “임명권자의 뜻을 존중하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공기관장의 자격요건으로는 경영능력, 전문성, 국정철학, 도덕성, 개혁성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박 대통령과 신 후보자의 발언을 종합하면 방점이 확실하게 국정철학에 찍혀 있다. 앞으로 단행될 각종 인사에서 국정철학 공유 여부가 핵심 잣대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국정철학만을 강조하다 보면 역대 정권 때마다 논란이 된 ‘코드 인사’ ‘낙하산 인사’ ‘정실 인사’의 재판(再版)이 될 수 있다. 능력을 보지 않고 정권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가 난무하면 관치(官治)·권치(權治) 금융의 폐해를 자초할 뿐이다.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고위 공직자에 임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장을 뽑을 때에는 경영능력과 전문성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아야 한다. 선진국의 금융기관과 비교할 때 구멍가게 수준인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세계적인 규모로 키우려면 금융기관장의 경영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노무현 정부의 코드 인사와 이명박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던 박 대통령이 비슷한 길을 가지 않기 바란다. 공공기관장 제청권자들도 코드 인사를 밀어붙이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