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의 부동항 욕심이 한국전쟁 발발 단초됐다”

입력 2013-03-19 19:59

6·25 전쟁은 당시 공산권 지도자 3인의 ‘동상이몽’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오시프 스탈린과 마오쩌둥(毛澤東), 김일성의 서로 다른 계산과 명분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엇갈리고 결합하면서 결국 냉전이 열전으로 번졌다는 것.

새뮤얼 웰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선임연구원은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한국전쟁 관련 스탈린의 결정’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한국전쟁의 배경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했던 스탈린의 욕심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웰스 연구원은 “스탈린이 중국 공산화의 성공을 보고 한국도 공산국가가 되면 소련이 부동항을 확보할 수 있다고 계산했다”면서 “한국의 공산화를 통해 아시아에서 일본이 다시 부상하는 것도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럼에도 스탈린이 2차 세계대전으로 무너진 소련의 재건과 동유럽에 대한 통제 강화에 집중하기 위해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하면서도 제한적인 개입에만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한국전쟁 당시 소련은 북한에 무기 제공과 함께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는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

대신 한반도에 실제로 병력을 투입하는 역할은 마오쩌둥에 떠맡겼다는 것이 웰스 연구원의 분석이다. 당시 마오쩌둥에게는 미국의 위협이 ‘발등의 불’이었고, 신생 거대 공산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소련이라는 동맹국이 절실했다. 아울러 대만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스탈린의 확고한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던 상황이었다.

웰스 연구원은 한국전쟁 당시 김일성이 남한 내부의 지원세력의 존재와 역할을 확고하게 믿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전쟁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국전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공산권 지도자 3인이 한국전쟁에 개입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성찬 기자, 연합뉴스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