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임항] ‘식물’예찬

입력 2013-03-19 19:46

식물정부, 식물국회, 식물헌법재판소…. 제 기능을 못하게 된 기관명 앞에 ‘식물’을 마구 갖다 붙인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식물에 빗대는 것이리라. 식물이 듣는다면 정말 억울해할 일이다. 우리는 ‘움직이는 것은 동물,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식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동물이 식물보다 더 우월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생태계에 대한 상식을 조금만 들춰보면 ‘움직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은 동물이고, 움직이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것은 식물’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생태계 안에서 광합성을 하는 식물과 조류(藻類)만이 생산자로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생태계의 소비자인 동물은 자신이 유기물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식물이 만든 유기물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식물학자 이완주씨는 ‘베란다식물학’이라는 책에서 “식물과 동물 가운데 식물이 더 잘났다고 본다”고 적었다. “식물은 뿌리를 박고 한 자리에서만 일생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동물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식물도 감정과 생각이 있다는 게 이제는 정설로 통한다. 음악을 들려준 식물이 더 빨리 크고, 더 달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난(蘭) 애호가들 사이에선 난을 자주 건드리거나 만지는 것과 난분(蘭盆)을 돌려놓는 게 금기다. 식물들도 스트레스를 받고 슬픔이나 기쁨 같은 감정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나무들은 그들끼리 소통하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옆의 나무가 해충의 공격을 당하면 화학물질인 인포케미컬을 방출함으로써 다른 나무에게 이를 경고해 해충을 방어하게 한다. 나무가 옆의 나무를 베어버린 사람을 여러 사람 가운데서 구분해 내고 그 사람이 앞을 지나갈 때에는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던 실험결과도 알려져 있다.

식물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화초를 창가에 놓아두면 줄기와 잎이 햇빛 쪽을 향해 움직인다. 기후변화가 닥치면 인간의 개발행위에 취약한 동물은 바뀐 경관에 길을 잃고 쉽게 멸종의 길로 접어들 수 있지만, 식물은 자손을 북쪽으로 퍼뜨리는 방식으로 서서히 북상하면서 기후변화에 적응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간 합의가 이뤄지면서 ‘식물’정부는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식물’이라는 수식어를 나쁜 의미로는 더 이상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써야 할 경우에는 무뇌(無腦)정부나 무능정부라고 부르는 게 더 온당할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