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반발에… 키프로스, 모든 예금 과세 방침서 후퇴

입력 2013-03-19 18:36 수정 2013-03-19 22:10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조건으로 모든 금융계좌 예금에 과세하려던 계획을 결국 수정하기로 했다. 비준안 표결도 당초 예정된 19일이 아니라 하루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형적인 구제금융안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은 공정하고 책임 있는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키프로스발 경제위기의 조기 진화에 나섰다.

◇부정 여론에 백기=모든 금융계좌 예금에 과세하려던 계획이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은 18일 심야 회의를 열고 이를 수정키로 했다.

AP통신은 예금 잔액이 2만 유로 이하는 면세하고 2만∼10만 유로 미만은 6.75%, 10만 유로 이상은 9.9%를 부과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부에서는 10만 유로 이하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10만 유로 이상만 15.6%의 세금을 부과하거나 10만 유로 이하는 3%, 10만∼50만 유로는 10%, 50만 유로 이상은 15%의 세금을 물리는 수정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10만 유로 이상의 예금에는 9.9%, 그 이하에는 6.75%의 세금을 매기기로 했었다.

유럽중앙은행(ECB) 외르크 아스무센 집행이사는 “예금에 과세해 58억 유로를 징수할 수 있다면 키프로스 정부가 세율을 어떻게 하든 문제될 게 없다”고 강조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시장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21일까지를 임시 은행 휴무일로 지정하고 은행 영업을 중단키로 했다. 또 19일 하루 동안 주식시장을 폐장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당초 키프로스 의회는 18일 오후 실시하려던 구제금융 합의안 표결을 하루 더 늦췄으나 이마저 하루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포티스 포티우 국방장관은 “합의안 비준 토론이 연기되거나 논의를 하더라도 투표는 내일(20일) 실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합의안의 의회 통과 역시 불투명하다. 야당인 키프로스공산당, 사회당, 녹색당 등은 모두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키프로스 의회는 전체 56석 중 20석만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의 민주회복당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 등 주변국 파문 신속 진화=키프로스에 대한 구제금융안이 무산돼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경우 세계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미국은 신속하게 파문 진화에 나섰다. 미 재무부는 19일 성명을 내고 “제이콥 류 재무장관이 이 문제를 유럽과 협의하고 있으며 구제금융안이 공정하고 책임 있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례적인 예금 과세 조치에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조짐이 보이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독일 주도로 이뤄진 이례적인 구제금융안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 통화와 유럽연합(EU) 체제 유지를 위해 키프로스를 비롯한 남유럽 국가를 도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번 문제는 남유럽을 향한 북유럽 국가의 불신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금융시장은 키프로스의 조건부 구제금융안이 다른 유럽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지켜진 예금자 보호라는 터부를 건드렸다는 점에 우려하면서도 키프로스 문제로 불거진 불안감이 곧 투자 기회라고 분석했다. ING의 알레산드로 지안산티 금리전략가는 “(키프로스 사태의) 충격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경제와 금융의 규모와 양상에서) 키프로스가 고립된 사례이기 때문에 경제 규모가 큰 유로국에 비해 예금 손실은 미미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