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가야하는데…” 학생들 모두 꽁무니… 나홀로 환경미화 담임은 괴로워

입력 2013-03-19 18:07 수정 2013-03-19 21:12


서울 K고등학교의 2학년 담임교사 김모(28·여)씨는 지난 18일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색종이 200장을 잘랐다. 오는 22일로 학급별 환경미화 심사가 다가왔지만, 학생들 중 돕겠다고 나선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어 직접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학기초에 선출된 학급 임원들마저 ‘학원에 가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김 교사는 “학부모들이 전화해 ‘학원에 결석할 수 없으니 우리 애는 좀 빼 달라’고 하니 참여를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어쩔 수 없이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일 나무의 나뭇잎을 손으로 일일이 오리고 있다”고 말했다. 교생실습을 나온 예비교사가 보다 못해 김씨의 곁을 지켰다.

환경미화 시즌을 맞았지만 예전과 달리 교사들을 거들겠다는 학생들이 없어 담임교사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달려가기 바쁜 학생들을 붙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환경미화 업무를 떠맡았기 때문이다. 교사들은 “반 학생 모두가 방과 후에 남아 색지를 오려붙이고 함께 청소하던 예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개학 후 2주 동안 새로운 업무 파악 때문에 힘들었는데 환경미화까지 혼자 맡아서 하려니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간제 교사의 경우 상황은 더 열악하다. 환경미화도 점수가 매겨지는 학급별 경쟁이다보니 동료 교사들로부터 도움을 받거나 조언을 듣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 첫 담임을 맡은 서울의 한 중학교 기간제 교사는 “옆 반 선생님께 노하우를 물어보려고 해도 눈치가 보여 물어보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답답한 마음에 다른 학교에 다니는 기간제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다”고 말했다. 다른 기간제 교사 역시 “우리 반 회장 학부모의 경우 환경미화에서 빠지는 대신 대형 화분 2개를 보내겠다고 하더라”며 “아이에게 ‘학원을 빠지고 도와주면 안 되겠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부 국제중이나 특목고 학부모들의 경우 환경미화에 사용할 미술품들을 완제품 형태로 판매하는 용역 업체를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교사들이 권유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 S중학교 교사 이모(42·여)씨는 “우리 학교의 경우 이런 과열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반당 5만원의 상한선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 준비를 하도록 했는데 학생들이 아이디어를 내기는커녕 자원자가 한 명도 없어 난감하다”며 “아무리 학원이 중요하고 ‘스펙’이 중요하다지만 학우들 간의 협동심마저 사라지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