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10년] 수십만 목숨 앗아가고… “미국은 졌다”

입력 2013-03-19 17:29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지 19일(현지시간)로 꼭 10년이 흘렀다. 당시에도 시민사회와 국제여론이 격렬히 반대한 전쟁이었다.

10년을 맞은 지금 미국 언론들은 앞다퉈 ‘반성’에 가까운 분석 기사를 내놓고 있다. 비난을 무릅쓰며 침략을 강행하고, 막대한 피를 흘려 전투를 치러 낸 미국이 위안 삼을 만한 명분은 이라크에 민주 선거로 선출되는 정부가 들어섰다는 사실 정도다. 하지만 생활고에 지친 이라크인들은 대놓고 “후세인이 그립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얻은 것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10년, 이라크전은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을까.

◇막대한 손실=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이라크다. 미 브라운대 왓슨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이라크인은 민간인을 포함해 17만6000∼18만9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숫자는 조사 기관에 따라 40만∼50만명선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목숨을 부지했지만 강도·강간·절도 범죄의 희생양이 된 사람 수는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고도(古都) 바그다드의 귀중한 유물들이 약탈당한 것쯤은 사람 목숨값에 비하면 차라리 하찮은 일이 돼 버렸다.

이라크 다음은 미국이다.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결국 처형당했지만, 끝없는 게릴라전이 미군을 괴롭혔다. 4500명에 가까운 미군 사망자가 나왔다. 전쟁 비용은 2조 달러(약 2200조원)를 넘어섰다. 연구소는 향후 40년간 이 비용은 4조 달러 이상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미국의 진정한 손실은 전사자의 숫자만으로는 파악되지 않는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 중동 전역에서 반미 감정이 불타올랐고, ‘세계의 깡패’라는 냉소가 지구촌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전쟁을 감행한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지지도는 급전직하했다.

◇전쟁의 대가=이라크 전쟁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평가는 실로 냉혹하다. 포린폴리시(FP)는 지난해 ‘이라크 전쟁에서 얻은 열 가지 교훈’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라크에서 막대한 피를 흘리고 얻은 건 사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평가를 내놨다.

첫째. ‘미국은 졌다’는 교훈이다. 어떤 의미에서도 미국에 득될 것 없는 전쟁이었다. 후세인이 숨겨놨다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중동 전역은 물론 세계에서 반미 감정을 불러왔으며, 민주주의를 전파한다는 미군의 명분은 비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막대한 전쟁 비용은 다음 문제였다.

둘째, 미국이 전쟁에 휘말리기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이다. 미국은 강한 나라고, 언제든 전쟁을 경우의 수로 생각할 수 있었다. 따라서 평화는 늘 깨지기 쉬운 상태였다는 것. 당시 미국을 전쟁으로 이끈 건 군대나 중앙정보국(CIA) 혹은 석유회사보다 신보수주의자들이었다.

셋째, 시민사회와 정치지도자 사이에 충분한 논의 없이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큰 문제가 생긴다. 넷째, 이라크의 세속주의나 중산층에 대해 갖고 있던 미국의 환상은 잘못된 것이었다. 전쟁 전 미국인들은 이라크인들이 민주주의를 환영하리라 생각했다. 이라크인의 종교적 성향은 그리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다섯째, 추방된 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군대를 일으키도록 부추기는 망명자들의 정보에 귀를 잘못 기울이면 ‘재주 넘고 돈 주는’ 상황이 생긴다.

여섯째, 전쟁 상황에서 재빨리 무언가를 하는 건 어렵다. 일곱째, 상대편이 어떻게 나오든 당황하지 말아야 한다. 여덟째, 게릴라전은 전쟁범죄와 잔혹행위로 연결된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은 오랜 기간에 걸쳐 극렬한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미군 병사들은 도를 넘는 범죄를 자주 저질렀다. 아홉째, 계획만 짠다고 능사가 아니다. 이라크 침략에 대한 계획은 치밀하게 준비된 반면, 점령 이후 무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구상은 엉망이었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대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전술에 관한 방법이 아니라 전 세계를 머릿속에 넣고 미군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이 원하거나 의도한 건 결코 아니지만, 이라크 전쟁이 2011년 거셌던 ‘아랍의 봄’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다. 에드 후세인 전미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후세인의 몰락이 “바스당 독재자와 그 아들들의 제거 과정을 지켜 본 아랍권 반체제 활동가들에게 힘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고 CNN에 말했다.

그렇다면 왜 10년 전이 아니라 2011년에 ‘봄’이 왔단 말인가? 후세인 연구원은 이 시기 아랍 독재자들의 부정·부패가 점점 심해졌고, 이들에 대한 미국의 지지에 미국 내에서조차 의문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이 했던 말은 그간 미국이 겪은 딜레마를 한마디로 요약한다. “지난 60년간 우리나라는 중동에 민주주의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안정을 얻으려고 했지만, 둘 다 이루지 못했다.” 민주주의라는 대가를 ‘강제로’ 되돌려주고 안정을 얻으려다 둘 다 이루지 못한 게 이라크전일지도 모른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