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능 마비 위기에 처한 헌법재판소

입력 2013-03-18 19:03

朴 대통령 인선 서둘러 위헌적 상황 하루속히 해소해야

헌법을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기능마비의 위기에 놓였다. 지난 1월 21일 이강국 헌재소장이 임기를 마치면서 권한대행을 맡은 송두환 재판관마저 오는 21일 퇴임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후임자가 지명되더라도 임명까지 일정을 감안한다면 사흘 뒤인 22일부터 헌재는 7인 재판관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법 23조는 재판관 7명 이상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토록 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7인 재판관 체제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법률의 위헌 여부, 탄핵, 정당해산, 헌법소원 등의 중요한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이 찬성해야 하므로 재판관 1∼2명의 의견이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주게 되는 심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7인 재판관 체제는 말 그대로 숨만 간신히 쉬는 ‘식물 헌재’인 것이다.

지난달 13일 헌재소장으로 지명된 이동흡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면서 헌재의 기능마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대통령이 재판관 후임자를 발표해도 임명동의안 국회제출, 인사청문회 실시, 청문경과보고서 채택, 국회 본회의 의결 절차를 거치는 등 임명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취임 직후부터 후임 재판관 임명을 서둘러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헌재소장 장기 공백은 헌법 모독이자 법치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는 성명서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하지만 정부조직법 개정안 국회 처리가 늦어지면서 재판관 임명은 뒷전으로 밀려나 결국 오늘의 위기 상황을 맞게 됐다. 실제로 지금 헌재는 근로자파견법, 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화학적 거세법)의 위헌 여부 등 정치·사회적 반향이 큰 사건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헌재에 대한 정치권의 안이한 시각이다. 1988년 헌재가 출범한 이후 제때 재판관이 임명되지 못한 경우가 벌써 세 번째다. 2006년 전효숙 전 재판관이 낙마하면서 140여일 동안, 2011년에는 재판관으로 추천된 조용환 변호사가 정치권의 공세 속에 임명되지 못해 14개월 동안 8인 재판관 체제를 유지했다. 헌법 111조에 ‘헌재는 재판관 9인으로 구성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정치권은 당장 눈에 보이는 국정공백이 없다는 생각에 대한민국의 골간인 헌법을 준수하는 것을 가벼이 한다는 인상을 줘왔다.

헌재소장과 헌법재판관 임명은 헌법의 문제다. 박 대통령은 헌법 69조에 따라 취임식에서 헌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했다. 이번 공석 사태를 불러온 헌재소장과 송 재판관 후임자 지명은 모두 대통령 몫이다. 대통령은 인선을 서둘러 헌재의 기능마비 사태를 최소화 해야 한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의원들에게도 헌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최고의 가치이자 모든 가치판단의 근거다. 의원들은 정파적 이해관계와 여야의 정쟁 때문에 헌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의 토대인 ‘법치의 원칙’을 확립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