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예금 과세’ 유럽 뒤흔드나

입력 2013-03-18 19:02 수정 2013-03-19 00:28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2%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신청이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구제금융 지원 조건으로 사실상 처음 모든 금융계좌에 일회성으로 세금을 물리기로 하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거대 유로존 국가들의 불안감도 커져가고 있다.

영국 런던의 FTSE 100지수를 비롯한 유럽 주요 증시는 유로존 재정위기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로 급락 장세를 연출했다. 뉴욕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나 떨고 있니?’=모든 금융계좌에 예금과세를 하기로 하면서 그동안 구제금융을 받았던 그리스나 포르투갈, 스페인, 아일랜드 등에서는 언제든지 같은 잣대가 적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4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던 스페인의 경우 중앙은행이 직접 뱅크런(대량 예금인출)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고 있다면서 충격을 진화하는 데 부심했다. 외신은 키프로스발 뱅크런이 심화되고 다른 유로존 국가로 전이될지 여부는 스페인이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탈리아 역시 키프로스의 구제금융 신청으로 더욱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구제금융 사건으로 18억 유로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당할 것으로 예측되는 러시아는 이번 조치에 강력 반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이날 긴급회의를 열고 “(조치가 받아들여진다면) 부당하고 프로페셔널하지도 못하며 위험하다”고 말했다고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실 공보관이 전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 역시 “다른 사람의 돈을 몰수하는 조치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키프로스에 유치된 680억 유로의 예금 중 러시아계 자금은 200억 유로로 추정되는데, 주로 러시아 기업과 개인의 ‘검은돈’ 창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제금융 합의안 통과시켜야”=서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한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급증하면서 구제금융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의회는 휴일인 17일 긴급회의를 열어 합의안을 처리하려 했지만 의원들 다수가 예금 과세에 반발하면서 19일로 연기됐다.

키프로스 정부는 공휴일이 끝나는 19일 은행 개점 전부터 이 조치를 적용하려 했으나 합의 연기로 이도 어렵게 됐다. 금융당국은 뱅크런 공포가 확산됨에 따라 은행 개장일을 22일로 늦추기로 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이날 오후 늦게 전화 콘퍼런스를 열어 대책을 숙의했다.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키프로스 정부는 예금액이 10만 유로 이하면 6.75%, 이상에 대해서는 9.9%를 부과키로 한 세율을 수정해 10만 유로 이하의 과세율을 낮추고 이상 금액에 대해서는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유럽중앙은행(ECB) 외르크 아스무센 집행이사는 “키프로스 정부가 프로그램을 수정한다면 트로이카(EC·ECB·IMF)나 다른 정부에서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