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허창수 2기 체제 위상 ‘흔들’… “경제단체 맏형 노릇 못한다” 곳곳 볼멘소리

입력 2013-03-18 18:02 수정 2013-03-18 22:22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위기에 빠졌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경제단체들의 맏형 역할을 하며 재계를 대표하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전경련이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 새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기업들을 중심으로 제기된다.

이 같은 기류는 지난 14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이후 더욱 확산됐다. 이 회의는 GS그룹 회장인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2기 체제가 출범한 이후 첫 회장단 회의였기 때문에 재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러나 이 회의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의제는 공식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대신 전경련은 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한 가칭 ‘창조경제특별위원회’를 발족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결과물을 내놓다 보니 회의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18일 “전경련이 새 정부와 티격태격하는 것을 절대 원치 않는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재계의 가장 큰 이슈인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지나친 저자세”라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이 각 기업들의 말 못할 속사정을 모아 재계를 대표해 전달하지 못하면 기업들이 정부를 직접 상대하지, 굳이 전경련을 통할 이유가 없다”면서 “전경련이 궂은일을 하지 않으려다 보니 존재 이유조차 희미해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려고 했다가 갑자기 취소했다는 루머까지 떠돈다. 전경련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경련이 재계의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내부 응집력도 크게 떨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4일 회의에는 4대 그룹 회장들이 전원 참석하지 않았다. 대주주들이 불참한 주주총회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26일 전경련을 방문했을 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제외하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총출동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전경련이 매해 연례행사처럼 진행했던 30대 그룹 투자계획 발표도 올해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재계의 쌍두마차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입을 맞춘 듯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투자를 탄력적으로 집행하겠다”며 올해 투자계획을 확정짓지 않자 전경련만 머쓱해진 분위기다.

전경련은 이 같은 비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지난 회의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이슈를 논의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전경련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면서 “순환출자나 골목상권 등 각론에 있어서 기업들의 처한 환경이 모두 다르다 보니 집약된 의견을 발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올해 투자계획을 취합해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직 투자계획을 확정짓지 못한 일부 대기업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때문”이라며 “회원사들과의 결속력에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