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19일] 염려하지 마십시오

입력 2013-03-18 17:36


찬송: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82장(통 432장)

신앙고백: 사도신경

본문: 마태복음 6장 25∼34절


말씀: ‘염려’의 헬라어 어원은 ‘목 졸라 질식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사자가 먹잇감을 죽일 때 목을 물어 숨통을 끊어 질식시켜 죽이듯이 염려는 우리를 무력하게 넘어지게 만듭니다. 염려를 하면 감각을 잃어버리고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27절)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겠습니까? 여기서 ‘키’로 번역된 ‘헬리키아’라는 단어는 ‘생명’이라는 뜻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염려한다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겠습니까? 건강에 대해 아무리 염려한다 해도 생명을 연장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악화될 뿐입니다.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새들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절) 새들은 아무런 염려나 계획이 없이도 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백합화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28절) 백합화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를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백합화는 들의 풀입니다. 이 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백합화는 여자들처럼 옷을 만들기 위해 길쌈도 아니하지만 얼마나 아름답고 곱습니까?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를 생각해 보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보다도, 들의 백합화보다도 귀한 존재입니다.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26절) 세상의 미물도 하나님께서 돌보시는데 하물며 너희일까보냐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2절)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32절) 하나님 없는 인생은 무엇을 얻기 위해 근심과 걱정과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방인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34절). 엄밀히 따지면 내일은 나의 날이 아닙니다. 내일의 염려를 미리 앞당겨 염려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의 염려는 대부분 내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의 일을 미리 끌어당겨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내일의 염려보다 오늘을 충성되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염려를 그치고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33절)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를 의미하며, ‘그의 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33절).

기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설동주 목사(과천약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