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개정안 타결] 여론에 떠밀린 합의… 47일 국정표류 누가 책임지나
입력 2013-03-17 22:38
47일간의 표류 끝에 결론지어진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상처뿐인 타결’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적대적이고 소모적인 협상 과정을 통해 청와대는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모두 큰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다. 정권 출범기 새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배려기간인 ‘허니문’ 기간이 송두리째 날아가 향후 청와대와 정치권, 여야 관계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쪽은 박근혜 대통령이란 해석이 많다. 새 정권 출범이라는 국운 상승기를 온통 ‘나쁜 뉴스’로만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특히 ‘불통’ ‘일방주의’라는 야당의 집요한 공격에 박 대통령 이미지 자체가 적잖이 훼손됐다.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48%의 국민의 마음을 잡을 기회도 더 멀어졌다는 지적도 있어 향후 보다 적극적인 ‘국민 대통합’ 행보가 요구된다.
‘헛껍데기’ 지도부임이 드러난 여당의 손실도 만만찮다. 원내 제1당으로서의 정국 돌파력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야당은 물론 청와대와 여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거셌다. 당 주변에서는 이번 일이 잠잠했던 친이명박계를 비롯한 비주류가 반기를 들 빌미가 될 것이란 경고가 들린다. 민주당은 ‘발목 잡는 야당’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짙어졌다. 방송의 공정성 문제 때문에 반대한다면서도 왜 법이 바뀌면 공정성이 훼손되는지 국민을 설득하지 못했다. 비주류인 김영환 의원이 “말로는 국민들을 위한다 해놓고 오기의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개정안 협상은 1월 30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처음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때부터 난항이었다. 인수위의 ‘느림보’ 행보로 역대 정부보다 개정안 제출이 상당히 늦어졌는데도 박 대통령과 여당은 야당 설득 노력은 접어두고 당위성 설파에만 신경을 쏟았다.
박 대통령은 2월 25일 취임 이후 계속 원안을 고수했고 야당은 반대만 외치며 날을 세웠다. 개정안 문제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박 대통령은 지난 3일 여야 대표단을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민주당이 거부했다. 새누리당은 양측 사이에 끼어 아무런 협상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입만 쳐다보며 민주당 설득의 여지를 만들지 못했다.
청와대와 두 당이 막판 사흘간 ‘몰아치기’ 담판으로 개정안 문제를 매듭지은 데 대해서도 국민 시선은 곱지 않다. “도대체 언제 국정을 정상화하느냐”는 여론의 압력에 밀린 결과일 뿐 진지한 대화와 타협의 결과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15일 박 대통령의 여당 지도부 회동 이후 협상을 재개한 여야는 17일 “오늘이 데드라인(마감시한)”이라고 배수진을 쳤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김연아 선수가 우승했는데 우리도 기분 좋게 사인하자”고 말했고, 민주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교황 선출 콘클라베처럼 아주 끝장을 내자”고 했다. 오후 4시20분쯤 두 사람 말은 현실화됐다. 청와대도 이정현 정무수석을 통해 여야와 긴밀히 연락하며 협상에 ‘훈수’를 둔 것으로 전해졌다.
신창호 손병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