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구제금융… ‘금융예금 과세’ 도입 혼란

입력 2013-03-17 18:09 수정 2013-03-18 00:07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로는 다섯 번째로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특히 구제금융 조건으로는 이례적으로 모든 금융계좌에 예금 과세를 도입하기로 해 예금주가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치는 등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유로존 17개국 재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담을 갖고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키프로스에 100억 유로(약 14조50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키로 했다. 유로존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은 그리스와 포르투갈, 아일랜드, 스페인에 이어 다섯 번째다. 유로존은 구제금융 대가로 공기업 민영화 및 모든 금융계좌에 예금 과세 등을 도입하도록 요구했다.

특히 금융계좌에 대한 예금 과세 도입은 그동안 구제금융을 받은 다른 유로존 국가에는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10만 유로 이상 예치된 계좌에 대해서는 9.9%의 세금을 걷고 그 미만에 대해서는 6.75%를 부과토록 했다. 금융계좌 과세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다. 1990년대 이탈리아가 리라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모든 계좌에 0.06%의 세금을 부과한 적이 있었을 뿐이다.

키프로스에 예치된 예금 규모는 680억 달러로, 이 중 40%가량이 외국인 소유다. 상당수는 러시아인 소유로 알려졌다. AP통신 등은 금융계좌 과세 규모는 대략 58억 달러가 될 것이며, 이번 조치는 러시아 부유층이 탈세 등의 목적으로 키프로스 은행을 이용한다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17일 의회에서 합의안을 통과시키려 했으나 자국 의원들의 반대로 긴급회의를 하루 연기했다. 그러나 19일부터는 구제금융 조건을 적용할 방침이다.

금융계좌 과세 방침이 전해지자 예금을 찾으려는 시민들이 현금인출기 앞에서 장사진을 치는 진풍경이 키프로스 전역에서 연출됐다. 정부청사 앞에는 200여명의 예금주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한 시민은 니코시아의 한 저축대부조합(co-operative bank) 지점 앞에 불도저를 끌고 와 항의했다.

한편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대규모 현금 인출사태(뱅크런) 조짐을 보이자 스페인 중앙은행은 대변인 명의로 “스페인 금융 시스템은 완벽하게 정상”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스페인은 지난해 4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영국 정부는 키프로스의 예금 과세 도입으로 현지에 파견된 군인과 공무원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게 보호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17일 BBC방송에 출연해 “키프로스에 파견된 군인과 공무원의 피해를 정부가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