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지구적 자본화 시대, 중국에는 다양한 재앙과 병폐가 만연해 있다. 서구가 제기하는 인권, 환경, 소수민족 문제 등을 제외하고도 빈부격차, 지역격차, 농민공, 과도한 도시화, 고령화 등 수많은 문제가 노정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중국의 전통적 풀뿌리 민간문화가 파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기본적인 민간윤리마저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악덕기업의 불량식품, 윤리도덕의 타락, 약자나 환자는 물론 사고 피해자에 대한 무관심, 어린이 유괴나 인신매매, 부유층 자녀들의 권력·금력 만능주의 풍조 등등 그 사례의 종류나 정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러한 사정이다 보니 중국이 과연 ‘사회주의 국가인가?’라는 원초적 물음이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다. 지방은 지방대로 당과 토호 세력이 결탁해 조성한 ‘지방정부+개발회사+고리대업자’의 트라이앵글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기층 민중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사건도 잦다. 대표적인 것이 광둥성 루펑시 우칸촌이다.
부패한 촌장이 마을 공동소유 토지를 몰래 매각했다가 주민들의 강력한 항의 끝에 지방정부의 비호를 받던 관리들이 쫓겨나고 시위대가 중심이 되어 새 촌장을 직선제로 선출한 사건이었다. 그 결과 불법 매각되었던 땅 가운데 3분의 1 정도가 환수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 체험의 달콤함은 잠시고 여전히 당국과의 갈등은 물론 주민 내부 갈등으로 문제의 근원적 해결이 요원한 처지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투표를 통한 선거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과거제로 인재를 발탁해 온 중국에서 투표는 형식에 불과했다. 그런 면에서 우칸촌에서 실시된 주민 직접선거는 세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최근 우칸촌 인근 상푸촌에서 또 다시 거의 동일한 유형의 사건이 발생했다. 역시 독단적으로 주민 공유의 농경지를 특정 회사에 장기 임대계약한 부패 관료를 향해 토지 반환과 촌장 파면을 요구하는 집회였다. 그러나 당국은 우칸촌 사태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시위를 무력 진압했고, 문제 해결의 빌미는 없어 보인다. 이러한 사례는 향후 중국 전역에서 빈발할 것으로 예견된다.
물론 중국에 직접선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국 지도부가 ‘당내 민주화’야말로 정치개혁의 핵심이라 여기는 바와 같이 정치
개혁 실험은 도처에서 시작되고 있다.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모의투표’를 통해 선호도를 조사하는 이른바 ‘차액(差額)선거’도 확대되고 있다. 후춘화(胡春華) 서기도 취임 직후 광둥성 산하 기관과 기업의 단위 조직 및 성내 지역 단위 당 지도부를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노동계 역시 선거 바람이 불고 있다. 중국 25개 도시에 총 120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대만계 전자회사 팍스콘에서 직접선거를 통해 자유노조를 구성했다. 2012년 한 해 동안 약 151만건의 쟁의가 발생한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욕구 해소 없이 정치체제 안정은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접투표가 늘어난다고 중국의 민주 상황이 일시에 나아질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지도부가 미리 낙점한 후보에 대한 찬반투표인 데다가 그 결과가 바뀌는 경우도 없는 형식적 투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 인민들의 민주화 욕구에 아무런 감흥을 못 주고 있다는 점이다.
부패한 지방권력 축출, 주민의 직접투표 쟁취 등 중국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우칸촌이 지방 관료들의 방해와 내부 갈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제도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 운용해 가야 할 투쟁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칸촌의 딜레마가 민주주의 운용 주체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중국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빚은 결과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김태만 (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글로벌 포커스-김태만] 민주주의 실험과 중국의 꿈
입력 2013-03-17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