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찬희] 환율 그리고 환율전쟁

입력 2013-03-17 17:25

환율은 마법사다. 죽어가는 국가경제를 살릴 수 있고 한순간에 부도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수출 입국을 외치던 시대에 우리 경제는 고환율 정책으로 톡톡한 재미를 봤다. 반대로 잘 나가던 일본은 인위적 엔화가치 평가절상(플라자합의) 이후 장기 침체에 빠지기도 했다.

한국은 1945년부터 64년까지 달러화에 원화가치를 묶어두는 고정환율제를 운영했다. 64년 도입한 단일변동환율제도 약간의 변동을 허용할 뿐 고정환율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환율제도는 80년 복수통화바스켓제도, 90년 시장평균환율제도로 변신을 거듭하다 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로 대미를 장식했다. 환율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우리 경제는 ‘환 위험’이라는 고질병을 달고 살게 됐다.

환율정책은 잘못 쓰면 독약이다. ‘환율전쟁’ 혹은 ‘통화전쟁’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30년대 대공황 여파로 국제금본위제도가 붕괴되고, 무역제한조치가 만연해지면서 각국은 경쟁적으로 화폐가치를 평가절하했다. 결국 연합국 44개국은 44년 미국 브레턴우즈에서 달러를 기준으로 각국 통화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정했다. 바로 브레턴우즈 체제다.

1차 환율전쟁은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와 함께 찾아왔다. 60년대에 유럽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하고, 미국은 만성적인 국제수지(경상수지와 자본수지) 적자에 시달렸다. 급기야 프랑스 등 일부 국가가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은 달러의 금태환 정지로 응수했다. 1차 환율전쟁은 몇 차례 달러화 평가절하를 거친 뒤 변동환율제 도입(킹스턴 체제)으로 마무리된다.

2차 환율전쟁은 일본·유럽·미국 간 무역마찰로 불거졌다. 일본 경제가 빠른 속도로 성장을 일궈내면서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얻어내자 이를 견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G5(프랑스·독일·일본·미국·영국) 재무장관은 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일본 엔화, 독일 마르크화 평가절상을 유도하는 플라자합의를 이끌어낸다. 이후 미국 경제는 활기를 되찾고, 일본은 장기간 후유증에 빠졌다.

최근 모습을 드러낸 3차 환율전쟁은 금융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 빠진 미국과 일본의 공격적인 양적완화가 중심에 서 있다. 자기만 살겠다고 싸우는 환율전쟁이 격화되면 세계무역 위축과 공멸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사람살이처럼 세계경제도 공생(共生)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김찬희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