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안현미] 눈물과 선물
입력 2013-03-17 17:53
택배가 도착했다. 고로쇠 1.5ℓ 12개가 들어있는 큰 박스의 보낸이 난에는 평소 알고 지내는 시인의 이름 두 글자가 적혀 있다. 뜻밖의 선물인데 보내는 사람도 보낸다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고 받는 나도 감사히 잘 받았다는 전화 한 통 넣지 않았다. 그냥 주고 싶었으니 보냈을 것이고 그 주고 싶은 마음을 굳이 반송할 이유가 없으니 받아서 달게 마시면 그뿐.
다만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애인이 눈물을 보냈다. 헤어지자는 말일까…’라는 제목을 달고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올려 나의 페친(페이스북 친구) 1300명에게 자랑질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 고로쇠 선물을 보내준 시인도 1300명 중 한 분이시니 내가 올린 포스팅을 보며 자신이 보낸 선물이 잘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비록 내가 고로쇠를 눈물로, 그를 애인으로 각색했다고 할지라도 그 선물이 순수 100% 고로쇠를 담았듯 순도 100%의 마음을 담은 그의 선물을 내가 1%의 오해도 없이 기껍게 잘 받았다는 것도 알 것이다.
고로쇠는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로 골리수(骨利樹)에서 유래하였으며 생체수이며 천연이온수라고 한다. 평소보다 열광적인 반응으로 뜨거웠던 그 포스팅은 121명이 좋아하고 댓글 32개가 달렸다. 그중에는 “헤어지자는 말 맞는 것 같아요. 눈물을 저렇게 통으로 보냈으니” “인간이 진짜 나빠요. 수액 고로쇠물은 바로 고로쇠나무 피 아닌가요. 그걸 뺏어 먹기 위해 피부에 상처를 내고 호스를 연결해서 수액이 나오는 족족 뺏어가니. 쯔쯔” “수액을 나누는 데도 정도가 있어 일정 시기가 되면 호스 빼고 구멍은 메워 줍니다. 나무도 살아야지요…. 글 올리신 분의 의도는 아니지만 나무의 아픔을 논하신 분이 계셔서…. 사람이 지구에서 군림하며 살지만 취하는 와중에 보살핌도 생각하여야 하지요” “글쎄…. 부실해서 싼 물이라도 먹이면 나을까 싶어 보냈는데 오만 상상을 다하는 것은 아닌지…. 부실한 연인과 얇은 주머니가 눈물을 나게 하는데…” 등 다양한 의견들이 달렸다. 모두 모두 옳으신 말씀.
그 눈물 아니 선물을 보낸 당사자도 댓글을 달았다. “헤어져요, 헤어져요, 이 생은 어차피 배렸어요….” “헤어지려면 제 눈물도 사셔야 해요. 120개월 할부만 가능”이라고 나도 댓글을 달았다. ‘싼 물’이라는데 우리는 왜 이토록 호들갑을 떨고 있는가?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상처적 체질’이기 때문이리라.
안현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