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상정] ‘곰의 가죽’ 펀드

입력 2013-03-17 17:51


2013년 1월 27일자 국민일보 인터넷판 쿠키뉴스를 보다가 조금 놀랐다. 2005년 한국 미술계를 흔들었던 이중섭 화백의 ‘국내 최대 위작 논란 사건’에 대한 기사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이 화백의 아들이 유품으로 물려받은 작품이라며 작품 8점을 매물로 내놓은 게 발단이 됐다고 하는데, 8년 전 사건인 데다 나 자신도 ‘미술과 법’이라는 책을 쓴 후에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올 초에 항소심 판결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이 사건이 종결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 화백의 가족이 이 사건에 연루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위작이 있더라도 저극적으로 막아야 할 입장에 있는 가족이 사건에 관여하다니.

미술품 판매수익 작가에 배당

그러면서 이 화백의 그 유명한 황소 그림이 35억원 이상의 가격으로 낙찰되었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가장 인기 있고, 고가의 작품을 남긴 작가의 유족이 가난 때문에 위작 사건에 관여된 것은 개인의 도덕성보다도 사회의 제도적 모순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거저 주다시피 헐값에 넘긴 작품이 천문학적 가격으로 거래되는데 그 작품의 일등공신인 작가나 그 가족은 팔짱을 끼고 있어야만 한다니. 도대체 이들에게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상해주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사실 이러한 작가를 돕고, 보호하겠다는 법으로 저작권법이 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저작권법은 문학 작가를 대상으로 그 복제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미술 작가들은 자기의 저작물에 대한 복제로부터의 수입이 주가 아니라 저작물의 판매에서 주로 수입을 얻는다. 이 때문에 작품을 일단 타인에게 양도한 후에는 미술가의 저작권이 실제로 유명무실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작품의 가격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의 명성이 상승함에 따라 비례해서 올라가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그러한 상승된 이익에 작가가 전혀 참여치 못한다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래서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의 여러 나라는 저작권법에서 ‘추구권(추급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추구권이란 작품이 판매된 후에 증대된 이익에 대해 그 일부를 저작자에게 분배해 주기 위한 제도이다. 이를 다른 말로는 ‘저작자 배당권’이라고도 한다. 유럽연합(EU)의 지침에 의하면 3000유로 이상으로 거래된 작품에 한하여 추구권이 인정되며, 5만 유로까지는 판매가격의 4%, 20만 유로까지는 3% 식이다. 예컨대 33만 유로에 작품이 팔렸다면 5만 유로까지의 4%(2000유로), 5만 유로에서 20만 유로까지 15만 유로의 3%(4500유로), 그리고 20만 유로 초과분인 13만 유로의 1%(1300유로)를 배당해야 하므로 모두 7800유로가 추구권료가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추구권이 도입되기 전에도 프랑스에서는 증대된 이익의 일부를 작가에게 배당한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최초의 미술품 투자펀드였던 ‘곰의 가죽(La peau de l’ours)’ 펀드 이야기다.

EU처럼 추구권제 도입해야

‘곰의 가죽’ 펀드는 프랑스인 앙드레 르벨이 1904년 그의 가족 및 친구 등 12명으로 구성하였는데, 10년 후인 1914년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예컨대 1908년 1000프랑에 구입한 피카소의 ‘곡예사의 가족’은 경매를 통해 1만2650프랑에 팔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수익을 올린 후, 거두어들인 수익의 15%를 작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곰의 가죽’ 펀드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곰의 자손이라는 신화도 있지 않은가. 곰의 가족 정신으로 우리도 추구권제도를 도입하여야 할 것이다. 타인 덕분에 이익을 얻었다면 일정 부분 그 타인에게 사례를 하는 것은 문명인의 도리라고 본다.

이상정(경희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