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영진 견제하도록 사외이사 제도 개선해야
입력 2013-03-17 17:56
우리나라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들이 여전히 거수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대기업 사외이사들과 마찬가지로 최고경영진의 입맛에 맞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도입된 지 15년을 맞은 사외이사 제도가 지금처럼 운영돼서는 곤란하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금융지주 등 금융지주사 사외이사들이 최근 3년 동안 400여개의 안건을 처리하면서 부결시킨 것은 단 1건뿐이었다. 지난해 KB금융지주가 추진한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안만 찬성 5표, 반대 5표, 보류(기권) 2표로 부결된 것이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외환은행 인수, 미국 교포은행 인수, 자회사 유상증자 등 무척 비중 있는 안건을 다뤘지만 사외이사들은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우리금융지주도 같은 기간 동안 107개의 안건을 처리했지만 사외이사들은 거수기에 불과했다. 심지어 외환은행은 모회사인 하나금융지주와 특수관계인인 하나고에 기부금 257억원을 출연하는 안건을 이사회에서 통과시켰다가 뒤늦게 백지화했다.
외환은행 노조가 문제를 제기한 끝에 금융위원회가 “은행이 대주주에게 자산을 무상으로 양도하거나 현저하게 불리한 조건으로 신용공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은행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 안건을 심의할 때 외환은행 사외이사 8명 가운데 이사회에 참석한 7명 모두 찬성했다고 한다. 꿀 먹은 벙어리나 다름없는 역할을 하면서도 사외이사들은 금융지주사에 따라 1인당 3300만원에서 799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외이사가 최고경영진의 전횡을 막고 기업 경영활동을 감시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도록 독립성과 객관성을 높여야 한다. 최고경영자의 입김에 좌우되거나 의중을 살피는 인사는 무조건 배제하는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 기존 사외이사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행을 개선해야 하고, 독립적인 인사들로 사외이사를 구성해야 한다. 선진국 기업에서는 경영이사회를 견제할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최근 일본 도요타는 경쟁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부사장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런 사례를 보고 배워야 한다.
소액주주, 노조, 우리사주조합 등이 실질적으로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길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기업과 금융기관의 대주주 위상에 걸맞게 제 역할을 다해야 할 때다. 선진국처럼 사외이사의 자격요건과 책임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