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애슐리 박 (2) 설교·기도만 들으면 눈물… “목사님, 독심술 하세요?”

입력 2013-03-17 17:02 수정 2013-03-17 20:10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과정에 입학할 즈음, 삶에 딱히 물리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내면에서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그동안 인본주의에 푹 물들어 있던 자아가 영원한 진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1988년 1월 첫 주 내 스스로 교회를 찾아갔다. 혹 교회라는 곳에서 나의 갈증을 해갈해 줄 진리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마지막 기대감을 갖고 찾은 곳은 서울 상도동 장승백이에 있는 ‘두레교회’였다. 동네에 있던 절을 개조한 허름한 교회의 구석에 앉아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말씀 후에 목사님의 기도가 끝나고 눈을 뜬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운 정장 투피스 치마 위에는 내가 흘린 듯한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코에서는 아직도 기다란 콧물이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일은 한번에 그치지 않았다. 거의 매주 예배시간마다 동일한 일이 반복됐다. 그리고 아직 성경을 잘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단에서 전해지는 목사님의 말씀은 나의 영을 강타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나 한사람을 위해 준비했을 거라는 착각이 들게끔 말이다. ‘저 목사님은 독심술을 하시는 분이신가 봐.’ 예배를 마치고 나면 나는 목사님의 눈길을 피해 숨곤 했다. 그 분은 내 얼굴만 봐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훤히 꿰뚫어 보는 분인 것 같아서였다. 그런 일이 1년 이상 계속됐다. 그러면서 그 교회에서 나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됐다.

89년 여름이었다. 처음으로 혼자 목사님 댁을 찾아갔다. 정근두(현 울산교회 담임) 목사님과 사모님은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식사로 갈 길 모르고 헤매다 이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 같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다. 식사 후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나는 개인적으로 처음 이야기를 나누는 목사님께 다짜고짜 질문했다. “목사님, 독심술 하세요?” 한참을 웃고 나신 목사님은, 그 분의 말씀이 영을 터치한 것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나에게 찾아 온 것이라는 설명을 해 주셨다.

그 후로 내 관심사는 온통 주님 한 분이었다. 20년이 넘게 견고하게 자리잡은 세상의 가치관들이 말씀의 진리와 충돌하며 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행동이 갑자기 모두 바뀐 것은 아니었다. 나는 석사과정 공부에 혼신을 다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열변을 토하기도 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여전히 술자리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나 내 마음의 중심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예수님이 자리하고 계셨다. 달라진 내면과 이에 반해 아직도 옛날의 습관이 남아 있는 내 모습에 갈등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당신이 누구인지 하나님 앞에 대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입을 통해 거듭 선포되는 그 말씀이 나의 갈등에 대한 해답임을 알았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이전 습관이 아직 내게 남아 있을지라도 나는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님을 매일 나의 영혼과 사단에게 선포했다.

이제 갓 태어난 어린 내 영혼을 정 목사님은 풍성한 영의 양식으로 공급해 주셨다. 말씀만이 영원한 진리이자 나의 살 길임을 알기에 나의 영혼은 그 양식을 먹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김창선 사모님은 마치 엄마가 어린 아기를 돌보듯, 나를 옆에서 지켜보시며 따뜻한 사랑으로 안아 주셨다. 내 영혼이 거듭나도록 두 분은 영적 부모가 돼 주셨다.

정리=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