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희대의 스캔들 ‘그녀는 살인마인가, 희생양인가’…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

입력 2013-03-17 17:16


연극 ‘독살미녀 윤정빈’은 실제 사건의 낡은 흑백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1922년 경성, 촌부 김정필은 쥐약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김정필의 흑백사진, 아무리 들여다봐도 ‘미인’과는 거리가 먼 얼굴이다. 그러나 당시 언론은 경성에 ‘독살미인’이 나타났다고 대서특필했고, 재판정에는 3·1운동 이래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다. 김정필은 세간의 관심 속에 자신의 무죄를 항변했다. 결국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 판결을 받고 12년을 복역한 후 모범수로 풀려났다.

희곡을 쓴 이문원 작가는 “김정필의 진실은 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감각적인 스캔들로 대중에게 소비됐다. 사라진 이 여인의 진짜 사연은 무엇이었는지, 이 기사를 쓴 기자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두 사람은 서로 만났는지를 연극으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화를 바탕으로 여주인공 이름을 윤정빈으로 바꾸고, 작가의 상상력을 입혔다. 연극에서는 말단기자 황기성과 친일파로 기득권을 대변하는 춘원 이광수의 대립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윤정빈이 남편을 죽인 악녀인지, 누명을 쓴 가련한 희생양인지를 풀어가는 스릴러 형식도 눈길을 끈다.

의상은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반면, 무대는 단순하다. 세트 대신 최소한의 상징적 물체로 장소를 표현했다. 신문사 편집국은 책상 세 개로, 감옥은 조명과 의자 두 개로 나타내는 식이다. 반면 윤정빈이 처음 등장하는 재판정이나 거리의 호외장면에는 열두 명의 배우들의 한꺼번에 나와 역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서울시문화재단에서 운영 중인 서울시창작공간 남산예술센터의 2013년 개막작품으로 ‘뷰티퀸’(2010), ‘아미시프로젝트’(2011)로 주목받은 극단 C바이러스와 공동 제작했다. 부부인 이 작가와 이현정 연출가가 호흡을 맞췄고 선명균(황기자), 김지영(윤정빈), 신용진(이아까미), 이종윤(최국장), 이은주(구미꼬) 등이 출연했다. 초반 배우들의 호흡이 척척 맞으며 유머러스하게 흘러가던 연극이 후반부로 가면서 다소 늘어지고 산만해지는 것은 아쉽다. 31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