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3부)] 산별노조 차원서 노사 협상… 정치파업은 불법

입력 2013-03-17 17:19 수정 2013-03-17 18:38


개별 기업에 노조원만 있고 노조 없는 독일, 단체협상은 어떻게

독일 개별 기업에는 노조가 없다. 직장평의회(Betriebsrat)가 사실상 노조 역할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노조는 아니다. 그러나 개별 기업에 노조원은 있다. 노조원은 산별노조에 가입돼 있고, 산별노조의 단체교섭에 따라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이 결정된다.

독일 기업 노사 협상은 중앙집중식이다. 전국 단위 노동조합인 독일노동조합연맹(DGB) 산하에 8개 산별노조가 있고 산별노조는 사용자단체와 임금을 포함한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노조의 협상파트너인 사용자단체는 독일사용자단체연맹(BDA)이다. 47개 전국 단위의 사용자연합회로 구성됐다. DGB는 618만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으며, BDA 역시 200여만개 기업을 대표한다.

노사 간 단체협상은 산별노조 차원에서 사실상 한번에 종료된다. ‘중앙-지부-지회’ 등 2중, 3중의 교섭을 벌이는 우리나라 산별노조와는 차이가 있다. 물론 독일 DGB 산하 8개 산별노조도 협상이 단일 창구로 진행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산별노조인 독일 금속노조의 경우 지역별, 부문별로 7개 지부가 따로 협상을 진행한다. 그러나 대부분 먼저 협상이 타결되는 곳의 결과와 유사하게 결론이 내려진다.

노사관계 전문 컨설팅 ‘워크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17일 “독일의 개별 기업이 현안을 놓고 직장평의회와 개별교섭을 벌이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산별교섭으로 교섭이 종료됨으로써 비용과 기간이 크게 단축되고 협상과정의 진통이 적다”며 “한국의 경우 이중적인 노사 교섭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경영자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독일 산별 노사 단체협약 유효기간이 최장 4년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임금협약은 대개 1년에 한 번씩 갱신한다. 국가는 일반적인 노동조건을 규정하지만 임금수준을 정하지 않는다. 임금협약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체결한다. 또 산별노조가 사용자단체와 합의한 임금협약은 개별 사업장의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된다. 직장평의회가 산업별 노사협약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시하기도 하지만 경영진이 산별 협상을 존중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론 산별 임금협약은 지역 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된다.

직업능력개발원 정원호 박사는 “독일의 경우 개별 기업에서 임금인상률 등을 직장평의회와 조정할 수 있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상여금을 주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며 “경영상의 어려움 때문에 산별노조가 협약한 임금인상률을 지키지 못할 경우 해당 기업은 산별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같은 산별노조 산하 기업이라도 기업별로 근로조건 격차가 심하기 때문에 산별노조를 중심으로 일률적으로 교섭을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독일은 임금체계가 산업별로 돼 있어 동일 직종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급여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아 산별 협약을 개별 기업에 적용하는 게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대기업의 급여 수준이 높지만 독일 중소기업의 급여는 대기업의 85∼90% 수준으로 차이가 크지 않다. 이 같은 임금 조건은 많은 인력이 중소기업으로 유입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다.

독일의 경우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권도 산별노조위원장에게만 주어진다. 산별 파업만 가능하고 개별 기업 차원의 파업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파업도 재적조합원의 75% 이상의 동의를 거쳐야 가능하며, 산별노조 위원장만이 쟁의행위권이 있기 때문에 중앙교섭에서 무파업을 선언하면 파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별노조 위원장에게 파업권이 있으나 사업장별 쟁위행위도 가능하기 때문에 파업의 빈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경영계의 지적도 있다.

독일의 경우 정치파업은 불법이다. 물론 독일노조가 처음부터 정치성을 띠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860년대부터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 히틀러 정부 때를 제외하고는 독일 노조의 정치참여는 매우 활발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경제발전 과정에서 독일 노조, 특히 산별노조는 오히려 경영자들의 중요한 사회적 파트너가 됐다. 위기 때마다 근로시간 조정을 통한 경영위기 극복을 위해 힘을 합쳤다. 특히 종업원 2000명의 대기업의 경우 근로자 대표가 감독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경영결정에 관여하는 것을 제도화한 이후 파업 등 쟁의행위보다 경영 개선에 앞장서는 사례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폭스바겐 노사는 1990년대 중반 일본차들의 공습 등으로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 몰리자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근로자들은 주 4일 근무, 총 노동시간이 30시간을 넘지 않도록 사측과 합의했다. 높은 실업률을 고려해 폭스바겐 노조가 사측의 생산합리화 조치를 받아들이고 고용안정 전략을 택한 것이다.

아슬라=글·사진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자문해주신 분들

▲김평희 코트라 글로벌연수원장 ▲김현철 코트라 프랑크푸르트 무역관 부관장 ▲남영호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박재영 주독일대사관 상무관 ▲옌스 갈 프랑크푸르트 괴테대 경영학과 교수 ▲이문호 워크인 조직혁신연구소장 ▲일자 노트나겔 독일연방상공회의소 무역담당 이사 ▲정원호 직업능력개발원 박사(가나다순)